허덕이는 傀儡中國(괴뢰중국) {一(일)】
香港(향항) 發行(발행) 某(모) 中文誌(중문지)에서
◇譯者(역자)의 □□◇
臺北(대북) 十三日發(십삼일발) UP電(전)은 中共(중공)이 新華沙(신화사) 北平人民報(북평인민보) 上海解放日報(상해해방일보) 上海人民報(상해인민보) 廣東人民報(광동인민보) 等(등)을 通(통)하여 一九四九年(일구사구년) 一月(일월) 以來(이래) 一百三十一萬名(일백삼십일만명)의 共産主義(공산주의) 反對者(반대자)를 死刑(사형)에 處(처)하였다는 것을 世間(세간)에 公開(공개)하엿다고 傳(전)하는 同時(동시)에 이에 對(대)하여 國府(국부) 國防部(국방부)에서는 實際(실제) 被殺者(피살자)는 五百萬(오백만)을 훨신 超過(초과)한다고 發表(발표)하엿다고 報道(보도)하고 있다
五百萬(오백만)의 虐殺(학살)! 共産主義者(공산주의자)의 殘忍暴虐(잔인포학)에 神經(신경)이 痲痺(마비)되다 싶이 된 오늘의 世紀(세기)의 不幸(부행)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되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歷史(역사)가 흘러가고 人類(인류)가 그 固有(고유)의 正常(정상)과 冷靜(냉정)을 回復(회부)하게 될 때 그들은 오늘의 이와 같은 變態(변태)와 狂氣(광기)에 對(대)해서 새삼스레 慨嘆(개탄)하고 驚愕(경악)하고…하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五百萬(오백만)의 怨鬼(원귀)! 이들 中(중)에는 나의 몇몇 親友(친우)도 어김없이 들어 있을 것이다
朗世武君(낭세무군)-그는 日帝時代(일제시대)부터 滿洲(만주)에서 生死(생사)를 度外(도외)에 두고 地下工作(지하공작)에 몸 바치던 呻(신)? 國民黨員(국민당원)으로서 나를 가장 熱烈(열렬)히 뒤따르던 中國同志(중국동지)의 한 사람이다 一九四八年(일구사팔년) 十一月九日(십일월구일) 저녁 奉天(봉천) 同(동)□街(가) 某潛伏場所(모잠복장소)에서 中共獨立(중공독립) 第四師(제사사) 政治工作隊(정치공작대)의 意外(의외)의 □□으로부터 그와 함께 간신히 脫出(탈출)하여 갈러진 後(후) 筆者(필자)는 十數日(십수일) 지나서 北京(북경)□지 安着(안착)했었건만 君(군)은 約束(약속)대로 나타나지 않었었다 그는 그때 좀 더 두고 보자고 奉天(봉천)p 머물어 있다가 끝끝내 捕虜(포로)된 것이었다
×尊(존)×君(군)- 내가 놈들의 搜索網(수색망)에서 간신이 빠저나와 어쩔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 덤비고 있을 때 「이 사람 旅行證(여행증)이 없더래도 덮어놓고 떠나게 中國(중국) 일이란 原來(원래) 떼써 가면서 그럭저럭 通(통)해지는 때가 많은 법이니까-」 이리하여 그는 나에게 脫走行(탈주행)의 □□을 집어넣어준 外(외)에 가난한 月給(월급)쟁이 살림신세에 唯一(유일)한 財寶(재보)라고도 볼 수 있는 夫人(부인)의 金(김)팔찌를 處分(처분)해서 中共紙幣(중공지폐) 五十萬圓(오십만원)의 旅費(여비)까지 調達(조달)하여 十日(십일) 아침 나를 奉天(봉천) 鐵西(철서)까지 바라다 주었었다 「언제고 다시 맞나게 되겟지」 이것이 쓸쓸한 우리들의 마즈막 告別(고별) 인사였었다 그는 家族(가족) 때문에 그곳에 머물러 잇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農大(농대)의 敎授(교수)였으며 熱烈(열렬)한 國民黨員(국민당원)으로서 一九四(일구사)0年代(년대) 初葉(초엽) 以後(이후)의 地下組織(지하조직) 關係(관계)의 中樞同志(중추동지)였었다
李逸泰(이일태) 小將(소장)- 新義州産(신의주산)으로서 黃浦軍校(황포군교) 出身(출신) 半生(반생)을 中國(중국)□□에 몸바치고 國府軍(국부군) 師團長(사단장)까지 지낸 典型的(전형적) 戰(전)투 指揮官(지휘관)이었다 一九四七年頃(일구사칠년경) 뜻한 바 있어 滿洲(만주)로 進出(진출)한 그는 그때 우리가 만들었든 國府軍內(국부군내) 反共韓人部隊(반공한인부대) 「長延民主自衛軍(장연민주자위군)」의 司令官(사령관)으로 就任(취임) 奮(분)투하면서 二百萬(이백만) 在滿同胞(재만동포)의 運命(운명)을 俎上(조상)에 놓고 같이 웃고 같이 울던 患難(환난)의 同志(동지)였다 奉天(봉천) 陷落(함락) 後(후) 幸(행)여 北平(북평)까지 脫出(탈출)했다 十二月九日(십이월구일) 北平(북평) 前(전) 문앞에서 筆者(필자)와 갈러질 때 사흘 後(후) 天津(천진) 내려와서 最後(최후)의 배 호北丸側(북환측)으로 같이 入國(입국)하기로 約束(약속)했었으나 그 다음날부터의 平津線(평진선) 不通(부통)으로 말미아마 그는 包圍(포위)된 當時(당시)의 北平(북평)에서 焦燥(초조)한 몇 週日(주일)의 潛伏生活(잠복생활)을 하다가 華南(화남)으로의 長途(장도) 徒步(도보) 逃避行(도피행)을 始作(시작)했었다 그러나 그는 山東省(산동성) 어느 地方(지방)까지 내려가서 끝끝내 붙잡히고 말었었다
殷(은)×□君(군) 十五年來(십오년래) 知己(지기)의 中國同志(중국동지) 먼저 脫出(탈출)한 그는 一九四八年(일구사팔년) 十二月七日(십이월칠일) 저녁 北平(북평) 「一畝園(일무원)」(食堂(식당))의 「쏘안 양터우」 料理(요리)로서 筆者(필자)의 再生(재생)을 따뜻히 祝賀(축하)해 주었었다 「將來(장래)는 韓國(한국)으로라도 도망치는 수밖에 없구려! 먼저 나가거든 집칸이나 큼직한 걸 잡어두게」 그러나 그 亦是(역시) 붉은 魔手(마수)의 運命的(운명적) 配置(배치)에서 버서나지 못하고 만 것이다 그때 「一畝園(일무원)」 晩餐會(만찬회)에는 다른 몇몇 東北(동북) 出身(출신)의 國大(국대) 代表(대표)(國會議員(국회의원))와 黨(당) 幹部(간부)도 있었는 것이다…
이렇게 느러놓자면 限量(한량) 없는 일이지만 五百萬(오백만)의 怨鬼(원귀)들 中(중)에 어김없이 들어 있을 나의 남겨두고 온 數(수)많은 韓中同志(한중동지)와 親友(친우)들을 생각할 때 나는 새삼스레 自己(자기)의 早老(조로)를 느끼는 同時(동시)에 또한 激昻(격앙) 憤慨(분개)한 悲憤(비분)의 情懷(정회)를 禁(금)치 못하였다 마랗자면 一種(일종)의 世紀的(세기적) 「센치멘탈」이라고나 할까? 「物換星侈(물환성치)」래야 二年(이년) 남직하게밖에 되지 않는데 내 疆土(강토)까지 더럽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中共(중공) 虐殺(학살)을 報道(보도)하는 通信(통신)조각을 흘터가면서 五百萬(오백만) 怨鬼(원귀)의 떼귀신 가운데서 나의 친구들의 낯과 모습이 그렇게도 똑똑하게 얼는거리고 있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느끼고 있었다 나는 울고도 싶었고 있는 말재조를 다 부려가면서 咀呪(저주)도 하고 싶었다
나는 「붉은 中國(중국)」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正確(정확)하고 더 徹底(철저)하게 알리고 싶다는 切切(절절)한 衝動(충동)을 새삼스레 느끼었다 過去(과거) 數年來(수년래) 中國問題(중국문제)에 對(대)해서 冊卷(책권)이나 쓰고 講演(강연)개나 하던 그것보다는 훨신 興奮(흥분)된 훨신 激情的(격정적)인 그것이었다
때마츰 案頭(안두)에는 香港(향항) 發行(발행)의 某中國(모중국) 週刊紙(주간지)가 놓여 있었다 五百萬(오백만) 怨鬼(원귀)떼 울음치고 그는 붉은 中國(중국)의 表裏(표리)와 經緯(경위)가 「新植民中國一年(신식민중국일년)」이란 除目下(제목하)에 가장 赤裸裸(적나라)하게 展示(전시)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