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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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

문화예술계 일각에서부터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후기 산업사회의 문화논리로 불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 문화예술계에 얼마나 수용되고 있으며 수용여부를 둘러싼 논란과 그 가능성은 어떠한가.

신세대예술운동협의회 주최의 「90포스트모더니즘 축제」를 계기로 포스트 모더니즘의 국내 수용 실태와 전망을 장르별로 엮어본다.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최근 몇년 사이 우리 문화예술계 일각에 일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을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등 그 바람이 미치지 않은 장르가 없지만 정작 한국적 수용의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나 분석은 별반 뚜렷하지 못했던 게 우리의 현실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다룬 책자나 논문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전위예술 행위예술 록비디오 전자음악 실험소설 연극 해체시 등이 심심잖게 선보이는가 하면 포스트모더니즘 축제가 마련될 정도로 그 열기가 만만치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문예사조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60~70년대부터이다.

제3세계의 민족해방운동과 우주선의 달착륙으로 대표되는 고도의 기술문화 그리고 일련의 충격적인 정치적 사건(예를 들어 월남전) 등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려줬고 기존의 인식틀로서는 더이상 현실을 묘사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예술형태를 모색케 됐던 것.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연상선상에 있는 「후기···」로 표현되기도 하나 이미 진부해져버린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에서 「脫···」이라는 견해가 상반되게 나타나고 있다.

아울러 포스트모더니즘의 생성배경에 대해 제국주의의 수탈을 겪어온 제3세계의 문예사조라는 시각이 있기도 하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사회의 소비자본주의가 잉태한 문화 논리라는 주장 또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은 △모든 획일화된 가치의 거부△대중우선주의△脫중심과 다양성추구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특히 예술의 상품화를 수용하는 대중 우선주의는 다국적 기업을 토대로 한 서구사회의 소비자본주의가 부추기는 문화제국주의 논리에 적합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상품소비문화가 제공하는 욕망의 재생산 무력한 행복감 비판의식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고도산업사회의 정신적공황에 대해 냉소주의적 태도를 야기시킨다는 우려 또한 적지 않다.

지나친 낙관주의로 말미암아 현재를 최고의 것으로 보는 체제옹호적 요소가 뚜렷하고 역사의 중압감에서 벗어나려는 현실도피 또한 지극히 걱정스럽다는 것.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리얼리즘과의 관계에 집중되고 있다. 반리얼리즘이냐 새로운 리얼리즘이냐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또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수용하는 것도 문화제국주의 논리라는 일방적인 거부도 다같이 경계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사회의 특수성과 발전단계에 알맞는 구체적인 대응전략을 세우는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하나의 경향에 불과한 것인지 뚜렷한 흐름을 이루고 있는 것인지조차 불분명 하다.

문학

기존형식 탈피···현실담아

국내 해체시 운동·실험 소설 등 등장

지나친 허무·상대주의 지양

포스트모더니즘의 출발점은 단연 文學이라 할 수 있다.

관습적인 언어나 문학양식으로는 더이상 현실을 담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 전통소설의 사망선고로 귀결됐던 것.

문학에 있어 포스트모더니즘의 기폭제가 된 것은 美國작가 존 바스의 「소설의 죽음」 선언(80년)이었다.

「고갈의 문학」이라는 글을 통해 바스는 종래의 문학양식으로는 동시대의 극도로 가변적이고 불가해한 현실을 그려낼 수 없다고 선언, 새로운 형태의 문학을 찾아내야 하는 시대임을 예고했던 것이다.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제 보르헤스의 , 사무엘 베게트의 작품들이 시작이었다면 마르께스의 , 움베르토 에코의 , 토머스 핀천의 , 로버트 쿠버의 등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성장(?)을 말해주는 동시에 저항적 역사인식과 정치의식을 보여주는 탁월한 작품들이라 할 만하다.

포스트모더니즘문학의 전형을 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이야기 방식의 혁신과 새로운 감수성등이 언급될 수 있을 정도이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글쓰기방식은 우선 소설의 플롯이나 詩의 구조를 내팽개치는 동시에 언어의 의미에 대한 회의에 빠져들었다는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소설의 경우 모든 문법과 틀을 부쉬버리면서 때로는 탐정소설 SF소설 우화소설 애정소설 등의 대중적 소설양식을 취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역사소설의 형태를 빌려 정치적 사회적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언어의 미로속에서 방황하는 작품들이 있기도 하고 언어의 위기를 침묵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까다로운 글들이 선보이기도 한다. 한국 문단의 일각에서 일고 있는 포스트 모더니즘 논의는 아직 어떤 체계를 갖춘 것이라 말할 단계가 아니다.

황지우 박남철 하재봉 이윤택(시인)등의 해체시운동, 이인성 최병현(소설가) 등의 실험소설이 이 계열에 포함될 수 있다. 리얼리즘과의 논쟁 또한 최근의 열기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해체시운동의 경우 나름대로 의의를 갖고 있으나 불분명한 해체의 대상과 지나친 허무주의 세속화 대중화 그리고 극도의 상대주의는 극복되어야 할 과제로 꼽한다.

70년대 리얼리즘-모더니즘논쟁이 리얼리즘-포스트모더니즘 공방전으로 옮겨붙은 것은 90년대초의 주목거리.

김성곤 관택영 김욱동 등이 대체로 수용론을 펴고 있는 반면 백낙청 윤지관 등 리얼리즘 진영은 비판론으로 맞서고있는 실정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 문단에 파고든 이상 수용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아울러 우리현실에 맞는 새로운 문학론을 찾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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