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재호의 재미있는 바둑이야기] 반칙패(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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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상의 대마는 "분노의 바다" 중앙을 향해 하염없이 떠돌며 목숨만 겨우 부지하는 상황이라 천지대패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 바둑은 아마 유단자가 두어도 이길 수 있을 만큼 정대상은 불리했다.

그러나 전국의 팬들이 지켜보는 TV대국에서 일찌감치 돌을 거둔다는 건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었다.

어쩌면 던질 시기를 못찾고 왜 두는지도 모르는 혼미한 상황이었다는 것이 좋은 표현일 것이다.

돌을 거두지 않고 끈질기게 버틴 보람이었을까.정대상은 단 한마디의 대사로 그 바둑을 승리로 이끌고 만다.

"어 공배가 하나 비었는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중앙에 부초처럼 떠도는 대마를 위협하는 수가 모조리 팻감이라 임선근은 속된 말로 아무데나 돌을 던져서 두어도 이기는 상황.

그런데 팻감을 쓰고 패를 때려 자신이 단수에서 벗어난 것까지는 좋았는데,그만 상대가 팻감을 쓸 때 때려내야 할 것을 마음이 급하여 아직 공배가 하나 비어있다는 정대상의 생떼같은 말에 그만 들어내고 마는 것이 아닌가.

팻감도 없어 무조건 지게 된 그 패싸움에서 정대상에게는 이게 웬 일인가.

정대상은 현행범을 보자마자 카메라 기사를 향해 "컷"을 외치며 이의제기에 나섰다.

그러자 해설자인 노영하가 바둑을 중지시키고 즉결에 회부하여 부당한 착수행위의 형벌을 적용하여 임선근의 반칙패를 선언하게 된다.

임선근이 망연자실해 하는 것은 당연했고 정대상은 미안해하면서도 연신 싱글벙글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라니.

사실 정대상이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순발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당시까지 MBC제왕전이라는 속기프로에서 기록을 맡아서 규칙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던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패싸움이 아니라도 사석을 그냥 들어낸 일이 있었고 사석이 아닌 돌을 들어낸 사건도 아주 드물지만 있었다.먼저 죽지 않은 상대의 돌을 들어낸 일화이다.

강훈과 김학수간의 89년 승단대회에서의 일이다.

참고로 김학수는 6단과 4단 두 명이 있는데 6단 김학수로 후배가 더 고단자이다.6단 김학수는 현재 미국 이민생활 중이다.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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