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역사읽기] <19> 기지촌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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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절 강조하는 사회정서, 인권 헌신짝처럼 짓밟아

 1992년 10월,경기도 동두천시 기지촌의 2평 남짓한 셋방에서 윤금이라는 26세 여성이 몸에 우산과 맥주병이 꽂히고 세제가 뿌려진 처참한 시체로 발견됐다.그녀는 주한미군 주둔지역에 살고 있는 여성중 매매춘업에 종사하는,이른바 기지촌 여성이었다.

 사건의 참혹성과 우리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알려지면서 윤금이 사건은 전국민의 분노를 불러왔다.그러나 기지촌 운동가들은 윤금이 사건이 유독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게 됐을 뿐 이전에도 더 많은 ‘윤금이’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지촌 여성(이들을 지칭하는 양공주 양갈보라는 이름에는 외국인과 어울린다는 경멸을 깔고 있다)은 어떤 존재일까.

 정절을 강조하고,외국인과의 관계나 혼혈아를 배타시하고,여성을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누는 사회분위기.이런 분위기는 기지촌 여성에게 이중 삼중의 억압이 되었고 그래서 이들은 ‘가장 낮은 곳의 사람’혹은 ‘죽어야 사는 사람’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미군의 인권침해도 많았다.사소한 시비로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 목숨을 잃어도 그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결혼하겠다는 말만 믿고 미국으로 따라갔다가 버림받는 여성들도 생겨났다.

 미국 웰슬리대학 캐더린 문(정치학)교수는 저서 ‘동맹국 사이의 성(sex among allies)’을 통해 '한국에서 기지촌 여성들은 외국인에 대한 성적 거래로 사회적 품위를 떨어뜨리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한국땅에 미군을 주둔시키기 위해서는 참아야 할 필요악이라는 이중적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밝혔다.문교수는 또 기지촌 여성이 정부의 필요에 따라 이용되기도 했다고 지적한다.

 71∼76년 주한미군과 한국정부는 ‘군기지 정화운동’을 벌였다.이때부터 기지촌마다 성병 진료소를 두고 정기적으로 성병검사를 했으며 보건증을 지참토록 했다.이에 대해 문교수는 '미국의 닉슨 독트린에 따라 미군이 철수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이때 이들을 ‘민간외교관’이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해 성매매를 금지하면서도 이를 필요에 따라 관리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사회학자와 여성운동가들도 80년 말이 돼서야 이들의 존재에 눈을 돌렸다.

 기지촌 여성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커다란 희생자다.윤금이 사건이 그렇게 여론화 되지 않았더라면 마클 이병은 무죄가 될 뻔 했었던 것처럼 이들은 미군으로부터 인권침해,억울한 죽음을 당하더라도 기댈 곳이 마땅치 않다.-끝- 그래서 여성단체들은 현재 진행중인 한미행정협정(SOFA)개정협상에 여성인권보호조항을 넣을 것을 주장하고 있다.

김진경기자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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