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문화] 蟄居
(숨을 칩 / 있을 거)
누구라도 한 번쯤은 蟄居를 꿈꾸기 마련이다.대상없이 짜증과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스스로에 대한 연민으로 어깨가 내려앉는 그런 때면 蟄居의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요즘 같은 시절에야 호사스러운 바람일 것이지만.
그런데 집에서조차 그런 처지가 되고 보면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어 또아리 튼 뱀처럼 될 터이니 이런 모습이 다름 아닌 蟄居이다.蟄居라는 것이 본래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것을 말하지만 제 마음의 領地(영지) 속에 안주하며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끊는 것 또한 蟄居이기 때문이다.
蟄의 執(집)은 '잡다'라는 뜻이니 벌레가 땅 속에 붙잡힌 것처럼 숨어버리는 것이 곧 蟄이다.그렇게 숨어 있을 만한 조용한 곳 또한 蟄이다.영웅호걸이 때를 만나지 못하여 숨어지내는 것 또한 蟄이니 그런 사람을 일러 蟄龍(칩룡) 또는 伏龍(복룡)이라 한다.蟄居하던 벌레나 짐승도 때가 되면 나갈 채비를 하며 꿈틀거리는데 이것은 蠢(준)이라 한다.하지만 蠢動(준동)이라 하면 되지 못한 것들이 법석을 떤다는 뜻으로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훗날을 위해 힘을 축적한다는 식으로 긍정적 의미가 다소 강한 蟄居와는 대조적인 것이다.
居의 尸(시)는 걸터앉은 사람을 본뜬 글자이고 古(고)는 固(고)와 통하여 '단단하다'는 뜻이니,居는 '한 곳에 자리를 잘 잡고 앉아 있다'는 뜻이다.그렇게 머물러 있거나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것 모두 居라고 한다.居住(거주) 居處(거처)의 居가 그러하다.
蟄居한다는 것이 그렇기도 하지만 居는 踞(거)와 통하여 '웅크리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김성진.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請息交以絶遊 世與我以相違 復駕言兮焉求.(청식교이절유 세여아이상위 부가언혜언구)
사귐을 그만두고 교유를 끊으리라.세상이 나와 맞지 않으니 다시 수레를 타고 무엇을 구하겠는가.
【陶淵明】의 〈歸去來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