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부산, 이래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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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서환 논설위원

늦은 오후 서울 명동 거리,징글벨 소리와 함께 쇼핑 나온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다. 외국인들도 눈에 많이 띈다. 도대체 여기가 대한민국이 맞나 싶다. 뉴욕 5번가나 동경의 긴자거리 뺨칠 정도다. 한 식당에서 저녁 모임을 갖고 '2차'에도 따라 붙었다. 서울의 밤은 참 요란하다. 불경기라고 아우성인데도 최고급 술집은 방이 모자란단다.

밤차로 새벽에 부산에 도착했다. 역 대합실 모퉁이에는 어김없이 노숙자들이 이곳저곳 버려져 있다. 광장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면서 올해는 유난히도 '거룩한 밤' '고요한 밤'이 가슴에 무겁게 와 닿는다. 명동의 쇼핑객과 부산역 대합실의 노숙자들이 느끼는 징글벨 소리는 분명 다를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실제 그날 밤 서울에서 만난,대구·광주가 연고지인 언론사 간부들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정 위원,부산은 요즘 살 만하지요. APEC도 열리고,아파트 분양도 충청도 다음으로 잘된다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부산은 살 만하단다. 특히 서울 출신 M씨의 '부산은 왕도(王都) 잖아. 청와대와 정부 요직에 인물도 많이 배출하고 있고…'라는 뼈 있는 농담은 지금 생각해도 거북하다.

부산,과연 살 만한 도시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부산은 잠재적 경쟁력 면에서 비전이 없어 보인다. 미래가 더욱 어둡다는 진단이니 위기임에 틀림이 없다.

지난 1985년에 전국 대비 13.5%이던 수출이 2002년에는 3.0%로 격감했고,제조업 생산 역시 9.8%에서 3.6%로 줄어들었다. 이같은 위축으로 결국 389만명(95년)이던 인구가 올 6월 현재는 369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급기야 실업률,어음 부도율이 전국 최고,경제 고통지수는 광주 제주에 이어 3위로 추락했다.

수천억원의 예산을 쏟아 부은 신발산업은 대구의 섬유산업만도 못해 '밑 없는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말았다. 백화점과 할인점들은 마치 꿀벌이 빨대로 꽃의 꿀을 빨아 먹듯 매일 수십억원씩 서울로 유출시키고 있고,부산신항에 선석을 늘리고 있지만 배후 산업이 날로 쇠퇴해 과연 희망을 담보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러면 왜 부산이 위기인가. 용지가 모자라서? 주력 산업이 없어서? 맞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를 진단하고 실행할 힘 있는 두뇌가 없다는 사실이다. 인구 369만의 제 2의 도시에 걸맞은 싱크탱크 하나 제대로 없다. 시 산하 부산발전연구원과 대학 경제연구소 등이 고작이다. 사람은 많지만 인물이 드물다. 상의회장 파문에서 보듯 리더들부터 제 밥그릇 찾기에 급급하고,폭탄주·로비 등 후진국형 '밤의 문화'는 활발하지만 토론하고 학습하는 선진국형 '조찬 문화'는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다. NGO·종교계·언론계 인사들 또한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교수와 공무원들이 앞서고 있지만 그들의 역량을 극대화할 시스템이 부족하다. 좀 과격한 표현이지만 공무원들의 머리에서 감성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본래 공무원들은 권위와 무사안일의 유혹에 빠져 전문가들의 조언을 잘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똑똑한 두뇌 한명이 십만 아니 백만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다. 실제 '겨울연가' 드라마 한편이 관광객 106만명을 몰고 왔고 110억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영상도시' 부산이 과연 PIFF 이외 무엇을 고민했는지 곱씹어 봐야 할 때이다.

며칠 전 한 세미나에서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부사장이 한 'PIFF에 머물지 말고 이순신이나 장보고 유적지를 관광 상품화하고 부산의 항구와 구릉지를 살려 한국판 베벌리 힐스를 만들어 보라'는 권유나,이재균 부산해양수산청장이 동분서주,크루즈 선을 띄운 것 등은 부산 사람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다.

지금 인천은 외자 유치로,대전은 행정도시로,광주는 광(光)산업으로,무섭게 변화하고 있다. 과연 부산은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 싱가포르처럼 '개인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으로 '내'가 아닌 '우리'를 지향하자. 그러다 보면 부산을 확 바꿀 두뇌와 시스템이 보일지도 모른다. 4you@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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