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역사] 금지곡 186곡 해금(1987.8.18)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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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곡 186곡 해금(1987.8.18)

중종 13년(1518년) 4월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를 '악학궤범'에서 삭제하고 오관산(五冠山)으로 대용하는 내용이 나온다. 음란하다는 이유로 궁중에서 사용을 금한 것이다. 정읍사는 기록으로 전하는 국내 최초의 금지곡이라 할 만 하다.

본격적인 한국 금지곡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다. 일제는 한국의 민족정신과 독립을 고취하는 노래 등 식민통치에 걸림돌이 되는 음악들을 통제했다. 해방 후에는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회정화와 건전가요 육성이라는 명분으로 강력한 가요 검열 정책이 시행된다.

가요 검열은 1962년 만들어진 한국방송윤리위원회(방윤)와 1966년 설립된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예륜)에 의해 실시되었다. 방윤은 방송음악에 대해, 예륜은 영화·무대예술·음악·음반 등에 대해 포괄적인 심의를 맡았다. 1976년 예륜에서 바뀐 한국공연윤리위원회(공윤)는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제를 벌여 통제의 고삐를 바짝 죄었다. 가장 많은 가요가 금지된 때는 긴급조치 9호가 발령된 1975년. 그해 6월 '공연활동 정화대책'이 발표되고 3차에 걸쳐 무려 222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아침이슬', '왜 불러', '미인', '그건 너' 등의 명곡들이 대중에게서 사라졌다. 금지사유는 대부분 가사퇴폐, 창법저속, 불신감 조장 등 유치한 것들이었다.

금지곡들이 다시 불려지게 된 것은 1987년 6월항쟁으로 인한 민주화의 여파 때문이었다. 그해 8월 18일 문공부의 가요금지곡 해금지침에 따라 금지곡 186곡이 해금되었고, 뒤이어 방송금지곡들도 차례로 규제에서 풀려났다. 1996년 사전심의제는 위헌결정을 받아 폐지되었고, 방송심의도 2000년 방송사 자체 심의로 전환되었다. 정광용 기자 kyjeong@


△강감찬 장군 사망(1031.8.19)

△위수사령부 설치(1949.8.20)

△김대건 신부 출생(1821.8.21)

△북한-일본 수교회담(2000.8.22)

△가수 조용필 평양 공연(2005.8.23)

△조선물산장려회 창립(19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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