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왕국' 가야 제철유적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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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봉림 유적의 제철유구. 왼쪽 원형 부분이 제련로. 제련로에서 나온 철찌꺼기를 모으는 배재(排滓)부가 옆에 붙어 있어 전체 평면은 열쇠구멍 모양이다. 사진제공=한국문물연구원

철의 왕국 가야의 제철유적을 드디어 찾았다.

백제 지역에선 충북 진천 석장리, 충주 칠검동 등 4곳에서 최근 제철유적이 확인됐지만 정작 철갑옷을 비롯한 수많은 철기가 출토된 철의 왕국인 가야에서 철을 생산한 유적지는 여태 한 번도 확인된 적이 없다. 밀양 사촌 제철유적에서 7기의 제련로가 확인됐지만 6~7세기 금관가야 멸망 뒤 신라의 영역에 들어간 뒤다. 최근 김해시 진영읍 여래리에서 제철유적이 발굴됐다고 했지만 제련로도 확인되지 않고 시기 역시 6세기보다 내려온다. 부산 강서구 지사동 부산과학지방산업단지에서 나온 제련로도 1차 조사에서 가야시대로 추정했지만 고려 조선시대 것으로 뒤에 드러나기도 했다. 야철제가 매년 열리고 있는 창원에서도 성산패총에서 관련 시설이 나왔지만 1차 제련시설이 아니라 오늘날의 대장간과 같은 시설이었다. 철광석에서 직접 철을 생산하는 고대의 제련로는 여태 가야 지역에선 한 번도 확인된 적이 없었다.

한국문물연구원 창원 봉림서 제련로 등 발굴
4~5세기 유적으로 철기제작 일괄공정 확인


이런 상황에서 경남 창원 봉림동에서 제련과정을 통해 선철(銑鐵)을 만드는 제련로가 확인된 것.

한국문물연구원(원장 정의도)이 경남 창원시 봉림동 394번지 국민임대주택단지 사업부지 내 문화재 발굴조사를 하던 중 4~5세기 제철유적을 확인했다고 13일 밝혔다. 제련로 1기와 2차 철가공 유적인 소성유구 4기, 창고나 작업시설로 사용됐을 수혈유구(부정형의 구덩이) 54곳 등 철 생산의 전 과정이 하나의 세트로 조사된 것. 철기제작의 일괄 공정을 알 수 있는 유적인 셈이다.

원형의 제련로와 타원형의 배재부(철광석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불순물로 나오는 다량의 철찌꺼기를 조기에 방출하는 시설)로 이뤄진 제철유구는 전체 길이 271㎝ 너비 110㎝. 밀양 사촌 제철유적에서 확인된 제련로와 마찬가지로 평면 형태는 열쇠구멍 모양이다. 제련로에서는 숯과 불에 탄 흙, 철재(鐵滓·철찌꺼기)가 바닥에서 확인되고, 배재부에서는 철과 흙이 엉켜붙은 노벽과 다량의 철재 등이 남아 있었다. 발굴 현장 책임자인 현창호 한국문물연구원 과장은 "함께 출토되는 토기로 미뤄 보아 4~5세기대 제철유적"이라고 밝혔다.

제련로에서 북쪽 방향으로 반경 30m 내에서는 2차 철가공시설로 사용됐던 소성유구와 작업공방으로 짐작되는 수혈유구들이 배치돼 있다. 직경 60㎝가량의 작은 노(爐)인 소성유구들은 오랫동안 불을 맞아서 딱딱하게 굳은 벽체가 남아 있다. 54기가 확인된 수혈유구의 바닥에서는 철광석 원석이 나오거나, 철광석과 함께 중요한 제련연료인 숯만 나오거나, 컵형토기나 고배와 같은 토기와 함께 숯이 나오는 것에 비춰 보아 철생산과 관련된 작업 공방이나 창고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철유적 전공자인 손명조 국립제주박물관장은 "시기가 떨어지거나 제련로 시설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관련된 유물이 나오면 단정적으로 가야의 제철유적이라고들 했는데,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가야시기에 해당하는 제련로가 처음 확인됐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조사결과"라고 흥분했다. 다만 "그 넓은 지역에 노가 하나만 확인된다는 것이 이례적이며 인접지역이나 또 다른 지역에서 대규모 생산시설을 찾아내야 한다"고 했다.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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