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낙남정맥] 낙남정맥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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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끝나야 '정맥'이지!"

'신 낙남정맥' 구간 중 화산에서 굴암산 가는 주능선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진해만 풍경.

백두대간을 척추 삼아 힘차게 뻗어나가는 한반도 산줄기의 끝은 어디인가?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족보'로 엮어 펴냈다는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에 따르면 한국의 산줄기는 백두대간을 주축으로 여기서 가지 쳐 나간 12개의 정맥과 2개의 정간으로 이뤄져 있다. 낙남정맥은 지리산 영산봉에서 시작해 섬진강과 낙동강 수계를 가르며 낙동강 하구에 이르는 560리 산줄기. 국토의 최남단을 떠받치는 주춧돌이다. 이 때문에 낙남정맥의 끝을 규정하는 것은 백두산에서 발원한 한반도의 산줄기가 국토를 동서로 양분하며 남으로 내달려 어느 지점에서 그 끝을 맺는가를 확정 짓는 문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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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경표에서 낙남정맥을 기술한 부분을 보면 지리산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창원 불모산(지금의 용지봉까지 포함)을 지나 남쪽으로 분산(盆山)에 이르고 그 아래에 김해부 관아가 있다고 돼 있다. 분산은 지금의 김해 북쪽 분성산을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논란의 불씨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산경표 전체를 관통하는 대원칙은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르는 고개라는 뜻으로 산은 물을 못 건너고 물은 산을 못 넘는다)과 '주맥(主脈)은 반드시 바다에서 끝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성산은 물과 연결되지 않아 산꾼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산경표의 원칙을 고수하려는 산꾼들은 달마가 동쪽으로 가 듯 하나둘 분성산 동쪽으로 향했다. 신어산을 넘어 동신어산 아래 매리에 이르면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기 때문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해 남하하다 옥산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곡산, 여항산, 무학산, 대암산, 용지봉을 지나 신어산에서 끝을 맺는 이 구간은 지난 1994년 한 등산전문지가 '산경표에 따른 낙남정맥'이라는 제하로 현장 답사하면서 국내 산꾼들 사이에서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동신어산에는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동판이 설치됐고 낙남정맥의 끝이자 한반도 산줄기의 끝이라는 지위가 부여됐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부산경남지역 산꾼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주장에 반기를 드는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기 시작됐다. 동신어산은 낙동강 유역 안의 산줄기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져 주맥은 바다에서 끝나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

게다가 용지봉에서 냉정고개-황새봉으로 방향을 틀면 산세가 급격히 꺼진다. 낙남정맥 종주에 나선 많은 산꾼들은 장엄한 기세로 이어져 내려오던 낙남정맥의 기세가 용지봉을 지나면서 한순간에 맥없이 사그라지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일단의 산꾼들이 주목한 곳은 서낙동강 녹산 수문에 위치한 봉화산이었다. 1967년 완료된 대규모 매립공사로 현재의 해안선이 만들어지기 이전 봉화산이 위치한 서낙동강의 하구 녹산은 바다였다.

이들은 용지봉에서 북동쪽으로 가는 대신 바다가 있는 남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불모산-화산-굴암산-너더리고개-두동고개-보배산(보개산)-장고개-봉화산을 지나 부산 강서구 녹산수문에 이르는 도상거리 24㎞의 새 구간을 일명 '낙남꼬리'라 불리는 낙남정맥의 끝자락으로 새로 규정했다. 기존의 낙남정맥과 구분 짓기 위해 '신(新) 낙남정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신 낙남꼬리'는 용지봉-냉정고개-황새봉-나밭고개-영운이고개-신어산-동신어산-매리에 이르는 기존 낙남정맥 끝 구간에 비해 9㎞가 짧다. 하지만 700~800m 고봉으로 이뤄진 산들이 많아 기존 코스에 비해 능선이 뚜렷하다. 또 산꾼들이 많이 찾는 인기산도 여럿 포함돼 있어 종주의 즐거움도 한결 낫다는 평가다.

신 낙남정맥은 차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 부산경남지역 산꾼들 사이에서는 '낙남정맥의 재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신 남낙정맥 코스 종주가 하나의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

산&산팀 홍성혁 산행대장은 "용지봉에서 바라볼 때 냉정고개보다는 불모산 쪽 산세가 훨씬 뚜렷하기 때문에 기존 구간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산꾼들이 생겨났고 결국 신 낙남정맥이라는 새로운 기류를 형성하게 됐다"며 "이는 어디까지나 산경표 원전에 대한 후대의 해석의 차이일 뿐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글=박태우 기자 wideneye@ busan.com

사진=문진우 프리랜서 moon-0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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