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규의 세상 속으로] 윤치영 서울시장, 이명박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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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의원으로부터 "좀 더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없느냐"며 서울시의 도시계획 부재를 추궁당했다. 서울시장의 대답이 걸작이다.

"나도 좋은 도시를 만들 줄은 압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아무런 도시계획 사업도 하지 않고 있는데도 이렇게 많은 인구가 전국에서 모여들고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멋진 도시계획을 해서 서울시가 정말로 좋은 도시가 되면 더욱 더 많은 인구가 서울에 집중될 것입니다. 내가 서울에 도시계획을 하지 않고 방치해 두는 것은 바로 서울 인구 집중을 방지하는 방안입니다."(손정목·서울도시계획이야기4)

1963년 12월부터 66년 3월말까지 서울시장을 지낸 윤치영씨의 이야기다. 그 당시 서울시 인구는 350만 명 안팎이었다. 그때쯤 박정희 정권의 '대도시 인구집중방지책'도 나왔다. 박 대통령은 75년8월 경남 진해 하계휴양지에서 "밖에 알려지면 큰일난다. 서울의 인구집중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수도를 옮기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며 비밀리에 수도이전을 추진했으나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대통령 선거때마다 수없이 등장한 이 문제를 노무현 대통령이 실행에 옮겼다.

"나는 대한민국의 균형발전과 수도권의 새로운 비전은 우리들의 꿈의 크기이자 미래에 대한 상상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행정수도를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그가 국가적 지도자의 자리에 서게 되고 선거에서 표를 모을 일이 없다면 그 역시 이만한 꿈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5년 3월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이 공포되었을 때 노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대비시켜보면 묘한 느낌을 준다. 이틀만에 이에 대한 '상소문'이 올라온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행정수도에 관해 저 이명박이 말씀드립니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행정도시는 어차피 성공하지 못할 일"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등장하는 A4 용지 11장 분량의 장문이다.

"대통령께서는 수도분할의 이유를 들면서 국가균형발전보다 수도권 과밀을 걱정하셨는데,이것은 인식의 차이에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수도권은 과밀화 진행 단계를 지났습니다. (중략) 국가균형발전은 획일적인 형평성을 지향하는 '하향평준화'가 아닙니다.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상향일류화'가 되어야 합니다. (중략) 서울과 지방은 서로 돕는 보완관계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라남도의 관광단지가 발전하면 서울의 시민들이 가서 보고, 지방의 무공해 농산물은 수도권 시민이 이를 소비합니다."

국가균형발전은 헌법에 명시된 국가 의무
세종시는 이를 정책에 반영한 결과물


서울시 인구가 줄고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수도권 집중문제를 비켜가려 했고 지방을 여가장소로 인식하는 서울 중심의 사고도 엿보인다. 전체적으로는 행정도시 건설에 대한 부당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문제는 이 성명서에서 언급한 대로 행정도시가 "정말 통탄할 일"이었다면 이 대통령은 '양심상' 대선때나 그 이후에도 그에 걸맞은 언행을 보였어야 했다. 세종시 건설을 계획대로, 그것도 차질 없이 추진하겠노라고 공개석상에서 수없이 다짐하고 약속하지 않아야 했다. 이제와서 뒤늦게 국민의 이해를 구하겠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도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세종시문제에 접근했고, 이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을 고민하는 것도 국가백년대계를 위해서다. 어느 백년대계가 더 가치있고 더 미래지향적일까. 국민들도 헷갈릴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적어도 기억해야 한다. 국가 균형발전이 헌법에 명시된 것은 1972년 유신헌법 때부터다. 40년 가까이 이어져온 국가의 의무이고 정책이다. 국토 면적의 11.8%에 전국 인구의 절반(49.5%)이 살고 있는 상황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세종시는 참여정부 이전부터 전국의 지방분권운동가들과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지역균형발전차원에서 줄기차게 요구해 관철시킨 것이다. 불편함이 바탕에 깔린 행정의 비효율과 수도권 집중의 비효율 중 어느 것을 더 깊게 고민해야 할까. 불편함이 정말 큰 문제라면 더 많은 행정부처가 내려오면 된다. jkang@busan.com 강종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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