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보입니까? 총구가 된 굴뚝… 산이 된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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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석의 '광고천재 이제석' 출간

전봇대에 광고를 붙여 총구가 결국 자기 뒤통수를 겨누는 모습의 반전광고 사진제공=학고재

굴뚝을 권총의 총구로 묘사하고 '대기오염으로 한 해 6만 명이 사망합니다'란 카피를 붙인 광고. 장애인을 위한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뉴욕 지하철 계단을 에베레스트 사진과 '누군가에게 이 계단은 에베레스트 산입니다'라는 카피로 고발한 광고. 병사가 총을 겨누고 있는 장면을 담은 포스터를 전봇대에 둥글게 붙여 총구가 다시 그 병사의 뒤통수를 겨누는 모습의 반전광고.

간결하면서도 명쾌하다.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편견과 상식을 깨부수는 아이디어가 망치처럼 머리를 때린다. 모두 세계 광고시장을 깜짝 놀라게 한 광고다.

이 광고를 만든 주인공은 한국인 이제석(28) 씨다. 이제석이 누구냐고? 2008년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군국주의 일본 깃발(욱일승천기)로 얼굴을 반쯤 가린 남자가 담장을 넘어가며 도둑질 하는 모습을 담은 게릴라 퍼포먼스를 벌이고 설치도 했던 주인공이다. 그는 '독도'를 넘보는 일본의 야욕을 세계에 고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세계 광고시장을 향한 도전기가 최근 책으로 나왔다. 책 제목은 '광고천재 이제석'(학고재/1만5천원). 이른바 이제석이 쓴 이제석이다. 그렇다고 자서전은 아니다. 책은 다소 거칠고 직설적이다.

그는 세계 유수의 국제 광고 대회에서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그는 이 책에서 아이디어 발상법으로 "다르게 보라, 거꾸로 보라"고 외친다. 여기까지라면 여느 광고책의 해설서와 다를 바 없을 터.

하지만 이 씨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가 더 있다. 무시당한 자신의 재능을 통해 우리 사회의 편견을 꼬집는다. 국제무대에서 통하는 이 씨의 재능과 원칙은 국내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 했던 것. 계명대 시각디자인학과 재학 중 국내 광고상에 여러 번 출품했지만 단 한 차례도 입상하지 못 했다. 졸업 후 국내 광고대행사 취업에도 번번이 실패했다.

왜 세계적인 광고천재는 국내에서는 상 한 번 제대로 받지 못 했을까. 왜 한국에서 버림받아야 했을까?

이 씨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에서는 실력보다 스펙이었고 학벌이었다"는 것. 그러면서 "미국은 적어도 노력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쳐주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게 이 씨가 하고 싶은 말이다. 광고에 관한 책, 하지만 결코 광고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광고 천재, 그가 편견에 갇힌 한국 사회에 던지는 통렬한 비판, 그의 광고만큼 유쾌, 상쾌, 통쾌하다.

문득 도종환의 '담쟁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대, 마음속 고정관념도 깨고 싶다면, 이 책을 일독하라!

마침 8월 26~28일 해운대 그랜드호텔 일대에서 'New Wave(새로운 물결)'란 주제로 제3회 부산국제광고제(AD SRARS 2010)가 열린다.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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