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게을러? 빨대 2만 개 꽂아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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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생활의 달인'. 던지면 휙 하고 원하는 자리에 신문이 날아가고, 초고속카메라로 봐야 손동작이 보일 정도로 빠른 칼솜씨를 보이는 이들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수십 년간 한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반복된 '노동의 훈장'들이다.

미술에도 경탄할 만한 정도로 엄청난 노동이 들어간 작품들이 많다. 최근 1~2년 사이의 전시에서 부쩍 그렇다. 지난 5월 가나아트 부산의 '그랜드 위버(Grand Weaver·방직공)'전. 그 중의 한 예로 홍상식은 가로 세로 40㎝ 크기에 얼추 2만여 개의 빨대를 꽂아 작품을 만들었다.

6개월간 점 찍어 갯벌 그림 완성
나흘 동안 타일 6천여 개 깔기도
닦고 찍고 쓰고 "우리는 노동자"


갤러리 604에서 전시한 최병소는 10m 길이의 신문용지에 볼펜과 연필로 무수히 많은 선을 그었다. 꼬박 4개월간 중노동을 했다. 이듬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진 하성봉은 여섯 달가량 짧은 선이나 점을 찍어 갯벌의 풍경을 그렸다.

전시장 벽면에 무수하게 쓰인 '애'라는 글씨는 황지희의 작품으로 지금은 지워졌다. 사진제공=대안공간 반디

가나아트 부산점에서 전시한 유승호는 2㎜ 크기도 안 되는 깨알 같은 글씨로 커다란 수묵화를 그렸고, 박자현은 펜으로 한점 한점을 찍어 그림을 그린다. 가족이나 또래 친구의 모습을 사진보다 더 실감 있게 그려 내는데, 100호 크기를 완성하는데 몇 달이 걸린다.

이영준 김해문화의전당 전시교육팀장은 "반복적인 그리기를 통해 매체와 작가의 감각이 하나로 체화된다. 이것들은 이성보다 몸의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최근 경향도 한몫하고 있다"고 짐작했다.

작가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제각각이지만 분명하다. 최병소는 신문기사 하나하나를 지웠는데 그것은 왜곡된 논조로 지면을 가득 채우는 언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하성봉이 무수한 점을 찍어 갯벌을 그린 것은 멀리서 보면 그저 먹먹하지만 막상 그 안에 들어가면 무수한 생명력이 있다는 '생태의 본질'을 그린 것이다. 박자현은 또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그려 '88만 원 세대'의 비애를 전하고 있다. 박자현은 "하루 8시간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스스로 노동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고 했다.

이들은 나은 편이다. 판매할 수 있는 작품이라도 남으니 말이다. 작업 자체에만 의미를 부여하면서 끊임없이 작업하고 노동하는 작가들도 많다. 그들의 작품은 사라진다. 판매보다 자기 진술, 과정이나 노동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지난해 김순임은 대안공간 반디의 바닥을 지우개로 일일이 닦아 냈다. 하루 8시간씩 나흘 동안 지우개로 목욕탕 욕조와 바닥 표면을 지웠다. 도 닦듯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생각을 하며 지우개로 바닥을 지웠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남아 있지 않다.

지난 4월, 그는 오픈스페이스배의 바닥에 가로 세로 10㎝ 크기의 흑경타일 6천385장을 나흘 동안 끼니도 거른 채 깔았다. 타일을 까는 과정에서 그의 작품은 완성된다. 그뿐이다.

최혜영도 지난 달 오픈스페이스배의 넓은 전시장 벽면에 몇날 며칠을 꼬박 새우며 테이프를 가늘게 찢고 붙였다. 전시가 끝나면 없어질 '작품'이었다.

목욕탕 바닥을 지우개로 일일이 닦아 내고 있는 김순임 작가의 모습.

황지희도 지난 달 대안공간 반디 벽면에 '애'란 낱말을 연필로 빼곡하게 채웠다.

미술평론가 김만석은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단순 반복으로 끝나고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들 예술가는 노동을 예술로 전환하는 방식을 역설적이고도 무의식적으로 포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예술가는 잘 난 게 아니다. 예술가는 노동자와 같은 것이다. 예술과 노동을 구분하지 말자. 거기에 진정한 예술이 있다"고 이들 '노동의 달인'이 말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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