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차고 마른기침 난다면? 금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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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때부터 담배를 피웠습니다. 청춘의 상징이기도 했고, 우정의 징표이기도 했고, 짜릿한 휴식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 갑씩, 30년간 변함없이 담배를 곁에 두고 사랑해 줬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차고, 조금만 건조해도 마른기침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일을 통해 우연히 받게 된 건강검진에서 저는 '폐기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로 당장 담배를 끊었습니다."

최근 방송된 KBS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를 비롯해 김태원, 김국진 등 애연가 3명이 폐기종 진단과 함께 금연을 권유받았다. 녹화 당일 큰 충격에 빠져 금연에 돌입했던 이경규. 앞선 글은 그의 입장이 돼서 상상해 본 일종의 회고라고 해 두자.

그런데 그들이 진단받았다는 폐기종은 대체 어떤 병일까. 얼마나 무섭기에 그들은 오랜 애인(?)과 하루 아침에 결별하고 건강을 다짐하게 된 걸까.

폐포 영구 확장, 산소 공급 곤란
방치 하면 만성기관지염·청색증
금연 필수, 공기 나쁜 곳 피해야

# 폐기종이란

폐기종은 호흡을 담당하는 폐포와 그 가까이 있는 구조물이 비가역적으로 늘어난 상태를 말한다. 호흡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온 공기가 드나드는 작은 관인 세기관지와 이를 통해 산소를 받아들여 혈액으로 공급하는 폐포가 영구적으로 늘어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폐포는 몸에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데, 폐 속으로 한 번 들어간 공기가 모두 나오지 않고 남아 있으면 새로운 공기가 들어가기 어려워진다. 폐포에서 산소의 공급과 이산화탄소의 제거가 원활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숨이 차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폐기종은 일반적으로 질병이라기보다 병리학적 용어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질병으로 보자면,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의 일종이며 보통 만성기관지염과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20~30대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 노인성 질환이지만, 오랜 기간 흡연을 했다면 40대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오염된 공기의 흡입이나 병원성 미생물에 의한 폐 감염 등도 발병의 원인이 되지만, 대부분은 장기간의 흡연에서 비롯된다.



# 이런 증상 의심해 봐야

폐 속에는 3억~5억 개에 달하는 수많은 폐포가 있다. 따라서 많은 폐포가 늘어나기 전에는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폐기종은 60세 전후에 증상이 나타나는 노인성 질환이라는 것이다.

대체로 호흡 곤란과 기침, 체중 감소 등을 호소한다. 초기 단계에서는 아무런 증상이 없을 수도 있지만 폐포 확장이 더 많이 진행되면 숨이 찬 증상이 일반적이며, 마른기침을 많이 하게 된다. 병변이 여기서 더 진행될 경우, 반복되는 기도 감염으로 만성기관지염을 동반해 지속적인 기침과 가래에 시달리게 된다. 만성기관지염은 2년 연속으로 1년에 3개월 이상 가래와 기침이 있을 때 확정되는 질병. 주로 폐기종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이 두 질환을 통칭해서 만성폐쇄성폐질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울러 몸 전체에 흐르는 동맥혈 속의 산소가 부족해져 입술이나 손톱의 빛깔이 푸른 빛을 띠는 청색증이 나타난다. 이차적으로는 폐에서 걸러진 산소를 공급받은 혈액의 흐름이 나빠져 심장 기능까지 저하되는 '폐성심'이 발생하기도 한다. 폐성심 또한 마찬가지로, 더 심해지면 간에도 이상이 생겨 부종이 생길 수 있다. 이 밖에도 전신 증상으로 불면증과 불안, 두통 등의 신경증세와 급작스러운 체중 감소도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지속적인 기침과 가래, 운동 여부와 관계 없는 호흡곤란, 잦은 기관지염이나 폐렴이 있는 만성 흡연자들인 경우에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중년을 넘긴 남성들 가운데 쉽게 숨이 찬 것이 느껴져서 심장 검사를 받았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고, 흉부 X선 사진을 찍어도 비정상적인 음영이 찍히지 않을 때에는 폐기종일 가능성이 높다. 폐기종은 X선으로는 잘 판단할 수 없고, 흉부 방사선이나 흉부 컴퓨터 단층(CT) 촬영을 통해 확인되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동맥혈 내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 측정과 폐기능 검사 등의 방법이 있다.



# 폐기종, 혹시 폐암의 전 단계?

폐기종과 폐암 모두 흡연·나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두 질환이 정확히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태지만, 폐기종이 있는 사람의 폐암 발생률이 일반인보다 높다. 연구의 방법이 다양해 수치가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폐기종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9~20배가량 폐암 발생 가능성이 높고, 의사들은 대체로 10배 정도의 위험성을 경고한다고 한다.

폐기종이 폐암의 전 단계라고 단정짓기는 힘들어도 10배쯤의 개연성을 갖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폐기종을 조기에 진단해 적절히 치료하는 것은 폐기종의 진행을 막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폐암의 발생도 예방할 수 있다.

더욱이 폐기종은 완치가 아예 불가능해 무엇보다 예방이 최선의 치료법이다. 한 번 늘어난 폐포는 다시 복구되거나 재생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폐기종의 치료는 무조건 금연을 선행조건으로 한다. 담배를 피우지 않음으로써 더 이상 폐포가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 어떤 약물 치료도 금연보다 효과적이지는 못한 것이다. 이와 함께 폐기종의 증상과 정도에 따라 기관지 확장제나 항생제 등의 약물 요법, 깨끗한 산소를 공급하는 산소 요법, 호흡곤란 증세를 완화시키는 호흡재활치료 등을 병행한다.

이 밖에 생활습관을 바로잡는 노력도 필요하다. 금연뿐만 아니라 간접흡연도 피해야 하고, 원활한 호흡을 위해 적절한 수분 공급과 습도를 조절해야 한다. 가급적이면 공기가 맑은 곳에서 생활하고 대기오염이 심한 곳은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폐기종 등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진단받았다면, 감기 등의 호흡기 감염은 급작스럽게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고, 유행성 인플루엔자나 폐렴 예방을 위한 예방접종도 잊어서는 안 된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도움말=부산대병원 호흡기내과 박혜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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