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老鋪] ⑤ 일광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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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카에서 디카로 상전벽해 세월의 기록

'사진과 부산'은 밀접한 관계다. 바다·산·강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개항·전쟁·근대화라는 역사적 배경은 '항구도시 부산'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산만의 아우라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자갈치시장, 감천동 태극도마을, 수정동 산복도로, 보수동 책방골목, 마린시티, 광안대교 등은 사진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찍고 싶은 '출사의 성지'다. 감천동 태극도마을은 '한국의 산토리니', '부산의 마추픽추'로 더 유명하다. 지난 50년간 오직 인간을 소재로 한 사진을 찍어온 최민식 선생은 "자갈치는 나의 영원한 촬영의 장으로서 한없는 기쁨이다"라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부산'이라는 도시는 그 자체로 이미 거대한 피사체인 것이다.

'카메라와 부산'은 이보다 더 밀접하다. 1876년 부산항의 개항과 더불어 일본으로부터 무서운 속도로 신문물이 들어왔다. 그 신문물 가운데는 카메라가 있었다. 일본 '사진연감' 기록에 의하면 1917년에 이미 남포동의 산기(山埼) 사진기점, 부평동의 오산(奧山) 사진기점 등 일본인에 의한 사진기점이 성행하고 있었다. 광복 이후부터 카메라가 공식 수입되기 시작된 1980년대 중반까지 부산은 외국에서 들어온 카메라의 집결지였다. 미군부대로부터, 대마도에서의 밀수로, 월남 파병 장병들의 귀국선으로, 외항선원들로부터 국내로 들어 온 카메라는 국제시장이나 광복동 등을 거쳐 서울의 남대문시장이나 충무로 등으로 퍼져 나갔다.

'사진과 카메라'에 있어 이처럼 부산만큼 공간성과 역사성을 두루 갖춘 도시도 드물 것이다. 이런 부산에서도 광복동에 위치한 '일광디지털'의 존재는 각별하다. 1956년 '일광카메라'로 창업한 '일광디지털'은 부산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카메라 전문점이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국내 카메라 유통의 산 증인으로, 지금도 2대에 걸쳐 형제가 가업을 잇고 있다.

"부자가 절반씩 나눠 이어온 56년 세월
대를 물려 사용하던 카메라는 소모품화 되었고
사진은 특별한 기억 대신 일상을 담는 수단으로 변했다"


광복과 한국전쟁이라는 격동의 시절을 경찰공무원으로 지낸 김병경(1929~1984년) 씨는 현재의 국제시장 가방골목 자리에서 '일광카메라'를 창업한다. 그의 나이 27세, 잘나가던 경찰공무원에서 카메라점 사장으로의 전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는 카메라는 고사하고 필름조차 수입되지 않던 때였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카메라나 필름이 고작이었다. 전쟁은 사람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더불어 허무주의를 양산했다. 허무주의는 퇴폐로 치달아 사치성 소비재의 소비를 부추겼고, 이는 곧 밀수를 성행하게 했다. 부산은 '최대의 밀수항구'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일본·홍콩·대만 등에서 들어 온 밀수품은 부산항을 거쳐 국제시장으로 모였다. 주요 품목은 직물·사치품·약품 순이었다. 사치품에는 화장품·모피·보석·시계, 그리고 카메라가 포함되어 있었다. 부산본부세관에 있는 세관박물관에 가면, 1950~60년대 주요 밀수품으로 카메라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경찰이었던 김병경 씨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누구보다 빨리 읽었을 것이다. 이는 김 씨 개인의 역사라기보다는, 부산 현대사의 한 부분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대의 흐름을 한발 앞서 읽은 선택은 적중했고, 사업은 번창했다. 1960년대 초반, '일광카메라'는 광복동으로 위치를 옮긴다. 광복동은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도시계획'이 시행된 곳이다. 가장 번화했던 이곳에 일본인들은 용두산공원에 있던 '변재천신사'의 이름을 따 '변천정(辨天町)'이란 지명을 부여했다. 광복이 되자 이 상징적인 거리에 '조국의 광복을 맞는다'는 뜻에서 광복동이라는 이름을 새로이 새긴다. 1960년대에 이미 번듯한 상가가 들어선 광복동엔 부산역을 출발해 대신동으로 가는 전차가 다녔고, 전차 운행이 끝나면 야시장이 형성됐다.

광복동으로 옮긴 '일광카메라'는 또 한 번의 도약을 맞는다. 외국을 드나들던 선원들이 부산항을 통해 가지고 들어 온 카메라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월급을 쪼개서 구입한 카메라가 몰렸다. 인터넷을 통해 가격이 공개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진율도 높았다. 라이카의 M시리즈는 당시 가격으로 100만 원을 호가해 어지간한 집 한 채 값을 웃돌 정도였다. 1972년에는 컬러현상소도 겸하게 된다. 이때 입사한 김종필(64) 부장은 아직도 '일광디지털'에 근무하며 지나 온 역사를 생생하게 전한다.



1983년 김병경 씨는 갑작스레 찾아 온 간암으로 쓰러진다. 한양대 건축과 졸업반으로 세 곳의 대기업에 입사가 확정되었으나 유학을 준비 중이던 김지현(56) 대표는 비보를 듣고 부산으로 내려 온다. 이듬해 부친이 작고하자, 3남 1녀의 장남인 그는 건축학도의 꿈을 접고 가업을 잇기로 한다.

이즈음 광복로는 문화와 예술의 거리로 변해 있었다. 광복동 입구에서 옛 미화당백화점에 이르는 200~300m에는 부산시내 20개에 달하는 화랑의 절반 이상이 밀집해 있었고, 전통 도자기를 판매하는 골동품점 또한 대여섯 곳이 있었다. '일광카메라' 이후 늘어나기 시작한 카메라 전문점 또한 13곳이나 성업 중이었다. 서울의 인사동과 카메라의 메카로 불리는 남대문로4가를 합쳐놓은 형국이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대기업의 참여로 시장 환경은 급변했다. 부친이 이뤄 놓은 '부산 최고·최대의 카메라 전문점'이라는 가업을 이어가는 김지현 대표는 안팎에서 몰려오는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하지만 이는 앞으로 그가 감당해야 될 변화의 서곡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 쇼핑몰이 활성화 되고 디지털카메라 세상이 열렸다. 가격이 공개되면서 시장은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이동했다. 역마진도 마다 않는 출혈 경쟁이 시작됐으며, 필름 등 소모품 판매는 급격히 감소했다. 이전과 비교해 '판' 자체가 바뀐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8년 부산시청의 이전으로 광복동 상권마저 과거의 명성을 잃어갔다. 이 과정에서 13곳이었던 광복로의 카메라 전문점은 2011년 현재 5곳으로 줄어 들었다.

변화된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김지현 대표는 사업 다각화, 공격경영, 자기혁신 등을 시도한다. 1990년에는 '㈜IMB테크'라는 방송용 기자재 유통회사를 설립했다. IMB테크는 소니 방송장비 공식 대리점으로, 디지털 방송 시스템, 첨단 강의실 시스템, 원격 화상 회의 시스템 구축 등을 주요 사업 분야로 하는 회사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부산 시내 주요 백화점에 카메라 판매점을 입점하고, 광복동 매장 역시 세 개 층 200평 규모로 확장한다. 2000년에는 44년간 지켜오던 '일광카메라'라는 사명을 '일광디지털'로 변경한다.

아버지가 창업해 28년간 운영하던 카메라 전문점을 그가 물려받은 지 올해로 28년째가 된다. 부자가 절반씩 나눠서 이어온 56년 세월이다. 그 세월 동안, 1839년 프랑스의 화가 M 다게르가 발명한 사진은 저장 방식 자체가 바뀌는 혁명적인 변화를 맞았다. 대를 물려 사용하던 카메라는 소모품화되었고, 특별한 기억을 기록하던 사진은 일상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변했다. 카메라를 밀수하던 나라에서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디지털카메라 보급률 세계 1위로 유명 카메라 메이커의 각축장이 되었다. 더불어 국제시장에서 시작한 작은 카메라점은 사진·영상장비 전문 유통기업으로 거듭났다. '일광'이라는 이름 속에는 상전벽해가 녹아있기에 그 존재 자체가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일광디지털'에는 켜켜이 쌓인 세월만큼이나 오래된 단골들도 많다. 취재 과정에 그런 단골 한 분을 만났다. 사진작가협회 회원인 오규용(76) 씨는 40년 단골이다. "선친 때부터 여길 다녔어. 디지털카메라는 돈이 안 들어서 좋아. 우리 같은 사람들 이 취미라도 없으면 용두산공원에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앉아 있어야 해." 오 씨에게 '일광'은 제품을 구매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커뮤니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젊은 아가씨 두 명이 매장으로 들어 온다. "인터넷에서 구입하면 더 싸게 살 수 있을텐데…"라고 물었다. 대학에서 의상을 전공하는 김지현(22) 씨는 "제가 가진 물건 중에서 가장 비싼게 이 DSLR이거든요. 그래서 몇 만 원 아끼기보다는 AS 등을 생각해 믿을 수 있는 정품을 구입했어요." 그녀에게 '일광'은 믿을 수 있는 브랜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고객은 '일광디지털'의 역사만큼이나 나이 차이가 났다. 그 차이를 이어주는 유일한 고리는 '신뢰'가 아닐까?

'일광디지털'의 미래의 대해 김지현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컴팩트카메라에서 DSLR로 고급화가 진행되고, 취미활동 인구 또한 꾸준히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미래를 낙관합니다. 기술 개발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겠지만, 그동안의 급격한 변화에 비춰보면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습니다. 외형을 키우기보다는 '일광'이라는 이름을 지켜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지현 대표와 서면에서 올림푸스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동생 명진(49) 씨에게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를 부탁했다. 가업을 이으며 카메라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막상 카메라 앞에서는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다. 두 형제의 뒤로 'since 1956'이 유난히 번쩍거린다.

1956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사진철학자'라 불리며 세계적 사진작가의 반열에 오른 김아타가 태어난 해이고, 인물사진의 거장 유서프 카쉬가 세기의 미인 오드리 헵번의 인물사진을 촬영한 해이다. 그리고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일광디지털'의 역사가 시작된 해다.

부산 중구 광복동 1가 53. 051-245-8255. www.ilkwang.co.kr landy@naver.com

박상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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