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기보 본사 사옥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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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봄 부산 중구 중앙동에 있는 삼협개발 빌딩. 공사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아 먼지 가득한 이곳으로 넥타이를 맨 한 떼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장화에 고무장갑 차림인 이들은 손에 대걸레와 연장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이고, 무얼 하려 했던 것일까.

부산 본사의 신생 보증기관인 기술보증기금은 당시 본사 건물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창립 날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정부의 창립 추진이 '번갯불에 콩을 볶아 먹듯이'다급했고, 부산에 마땅한 건물이 부족했던 까닭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보 창립단은 할 수 없이 준공도 제대로 안 된 삼협개발 빌딩 임차를 강행했다. 기보 직원들이 이에 며칠 후 열릴 창립식을 앞두고 급하게 대대적인 물청소와 간단한 실내 장식 작업에 나선 것이다.

기보는 이런 파란곡절 끝에 그해 4월 1일 창립식을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본사 건물 확보는 수난사 그 자체였다. 1992년 문현금융단지 내 본사 건물 부지를 계약했지만 폐유 소송, 사업주체 해체 등으로 세월만 보내게 된다. 2005년 유동성 위기 때는 본사 건물 자가 소유의 꿈이 완전히 물 건너간 듯이 보이기도 했다. 그해 9월 자구책 차원에서 본점을 현재의 중앙동 부산우체국 임차 건물로 옮겼다. 고초는 또 왔다. 2008년 신용보증기금과의 합병이 논의되면서 기보 자체가 공중분해될 처지에 놓였다. 이 어려움은 지역의 반대 여론에 힘입어 넘길 수 있었다.

기보는 이런 고난들을 모두 이기고 내달 11일 부산 문현금융단지에서 본사 건물 준공식을 갖는다. 전국적인 영업망을 가진 금융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자가 소유 본사 건물이 없었던 설움을 한꺼번에 날려버리게 된다. 22년간의 소원이 이뤄지는 것이다. 아울러 지지부진하던 문현금융단지 조성에도 선도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앞으로 부산에 본사를 둔 기업 신용보증기관으로서 중소기업과 벤처업체 발전에 더 큰 역할을 하길 바란다. 이준영 논설위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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