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소재 묵직한 주제 그리고 블랙코미디
'산 채로 말린, Stuffed'
'산 채로 말린, stuffed'는 뮤지컬이란 형식을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가마골 소극장 제공극장에 들어서자 무대 한편에 이정표가 있다. 치즈 가게, 쥐덫 가게, 오르간 교습…. 그런데 박제 가게? 그러고 보니 무대 왼편에 세워진 선반에 박제들이 놓여 있다. 그뿐인가. 무대 오른쪽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세워져 있다. 어째 으스스하다. 제목도 '산 채로 말린'이다. 그런데 이 작품, 뮤지컬이란다. 뮤지컬 하면 춤과 음악이 곁들여진 가벼운 장르로 생각하기 일쑤인데, 과연 어떻게 만들었을까.
작품의 배경은 삶과 죽음의 중간 지점쯤에 있는 중간 마을. 마을 사람들은 각자 가게를 운영하며 죽음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중 박제 가게에서 일하는 리오나는 박제를 하면 영혼이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현실 세상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행크는 실수로 아버지를 차로 쳐 죽게 만든다. 그런 행크에게 리오나는 행크의 아빠를 박제해주겠다고 하고, 그 말에 위안을 얻은 행크는 중간 마을로 넘어오게 된다. 행크가 마을에 머물면서 리오나와 사랑에 빠지지만, 이들을 염려하는 마을 사람과 군인의 등장으로 마을은 점점 엉망진창이 되어간다.
쥐덫가게 등 생소한 무대 배경
삶과 죽음 되돌아보는 뮤지컬
중간 세계라는 배경적 특징과 이를 상징하는 무대세트, 마녀를 연상시키는 등장인물 등으로 작품은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런 기괴한 요소들이 웃음을 만든다. 행크가 중간 마을 사람들에게 보험은 고통을 판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든가, 마을로 쳐들어온 군인을 마을 사람들이 처리하는 방법은 끔찍하지만 한편으로는 웃을 수밖에 없는 블랙코미디다. 작품은 이를 통해 끊임없이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관객을 생각하게 한다.
뮤지컬치고는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이라는 꽤 진중한 주제를 다룬 데 대해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한 이채경은 "뮤지컬은 음악과 춤이 포함된 거대한 장르"라며 "그래서 크고 본질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음악, 춤, 노래의 총체극인 만큼 작품 주제도 총체적이라 할 수 있는 주제를 담아야 한다는 것. 그녀는 또 "우리는 일상의 시간을 소비하면서 살아가는데 그냥 두면 그냥 흘러가 버리는 것들"이라며 "그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순간의 영원성, 진실성이라는 본질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작품 자체가 호러나 스릴러와 같은 공포물은 아니지만, 극 중 손가락을 자르는 에피소드나 기요틴(단두대)이 등장하기 때문에 평소 잔인한 장면에 익숙지 않은 관객이라면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초등학생 이하 어린 관객을 동반할 경우에도 유의할 점이다.
▶산 채로 말린, Stuffed=31일까지. 가마골 소극장.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3시와 7시, 일요일 오후 3시, 월요일 쉼. 연출 이채경. 051-868-5955. 박진숙 기자 tru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