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이만기의 인생은 씨름이다] 19 . 씨름을 왜 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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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훈련 중 도망쳤다 되돌아가기도

동료 선수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는 현역 시절의 이만기(앞줄 오른쪽) 교수. 나란히 달리는 이가 털보 이승삼 선수이다. 혹독한 훈련과 자기 관리가 있었기에 천하장사 타이틀을 10번이나 거머쥘 수 있었다. KBS 화면 캡처

내 인생에 가장 후회할 일 하나를 묻는다면 씨름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실제로 그만큼 훈련 과정이 힘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대회에 나가서 천하장사 타이틀을 연거푸 따내니 '만기는 씨름을 타고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 결과의 전부는 피나는 훈련 때문이다. 백조가 호수에 은은하게 떠 있는 것 같지만 그 발은 끝없이 물을 젓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황경수 감독님과 훈련 때문에 많이 싸우기도 했다. 우리는 끝없이 게으름을 부리고 감독은 끝까지 시켰다.


씨름 선택 인생서 가장 후회할 일

인기 없고 미래 보이지 않아 고민

힘든 운동 과정 통해 인생살이 배워


한 번은 지시한 훈련을 마치지 않았다고 운동장 한 바퀴를 돌라고 했다. 나는 악을 품고 열 바퀴를 돌았다. 일종의 반항이었지만 지기 싫어하는 성격도 한몫 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훈련 또 훈련. 훈련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이어진다. 그런데 같은 운동선수인데 야구를 하는 친구들은 특급 대우를 받고 씨름을 하는 우리는 늘 뒷전이었다.

마산상고 다닐 때다. 여름 훈련은 덥기도 하거니와 땀은 또 얼마나 많이 나던지. 그런데 야구부는 시원한 그늘막에 수박과 환타 같은 맛난 음료수를 박스째 쌓아놓고 훈련을 했다. 동창회에서 대중적인 인기가 많은 야구부만 적극 지원했기 때문이다.

씨름부는 동창회 지원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고작 시장에서 사온 통얼음 하나 대야에 담아 놓고 그 녹은 물을 마실 뿐이었다. 어린 마음에 차별이 서럽고 싫었다.

요즘은 나나 후배 호동이에게 동창회에서 매번 초대장을 보낸다. 자리를 빛내달라고. 농담이지만 진작 좀 잘해 주시지.

대학 1학년 때다. 늦은 사춘기였던지 인생의 진로를 깊이 고민했다. 생각이 많아지자 씨름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 '올림픽 종목도 아니고 국가대표도 없는 씨름을 더 해서 뭐 하나. 맨날 선배들에게 얻어터지기만 하고….'

급기야 불만은 합천 황강 합숙훈련장 탈출로 기획됐다. 친구 한 명과 몰래 택시를 불렀다. 마산으로 갑시다. 택시를 타고 도망을 가다가 의령쯤 갔을 때인가보다.

"우리 이대로 가면 인생 끝나는 것 아닌가?" 급히 도망을 치긴 했는데 슬슬 불안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택시를 돌렸다.

나는 운동할 때 원칙이 있다. 늘 정해진 훈련량 보다 몇 개라도 더 하는 것이다. 리어카 튜브를 철기둥에 매고 당기는 연습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얼마나 많이 당겼던지 고무줄이 터져 내얼굴을 때렸다. 마침 겨울이었는데 얼굴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스쿼트(바벨을 어깨에 얹고 앉았다 일어서는 하체 운동)도 마찬가지. 조금씩 무게를 늘려나가 최대 265㎏까지 들었다. 옛날 쌀 한 가마니가 80㎏짜리니까 쌀 세 가마 이상을 진 무게다. 보통 선수들의 체중이 130㎏인데 내가 그 두 배를 든 것이다. 힘이 이 정도는 돼야 기술이 먹힌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산에서 많이 뛰어서 지금도 걷는 등산은 부담스럽다. 워낙 뛰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산에서 뛰는 이유는 중심 이동 훈련을 하는 것이다. 돌멩이 하나하나까지 살피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머리를 빨리 회전시키고 순발력을 길러야 순간 상황에 재빨리 대응할 수 있다.

이런 다양한 훈련이 프로씨름 7년 동안 천하장사 등을 합쳐 모두 49번의 우승을 이끈 힘이었다.

강훈과 오랜 시합의 결과로 내겐 신체적 비밀이 하나 있다. 왼손 엄지손가락이 오른손 보다 훨씬 굵은 기형이다. 날 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왼손잡이여서 상대 샅바를 주로 당기는 왼손에 힘이 많이 가서 그렇게 됐다.

세상에 어떤 일이든 다 힘들다. 하지만 운동 과정의 고통을 끝내 이겨낸다면 뭐든 못할 일이 없다. 나는 운동을 통해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하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그나마 선수 시절 혹독한 훈련 경험과 몸에 익은 부지런함 덕분이다.

그러고보니 각종 직책과 다양한 방송활동 등 학교 말고도 일이 산더미다. 욕심을 내는 건 아닌데 내게 왜 이리 일이 몰리는지 나도 궁금하다.

정리=이재희 기자 jae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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