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아우른 절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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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의 '화가로 산다는 것' 전 전시 풍경.

단순함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절제된 색의 분할과 배합. 그 앞에선 감성보다 이성이 지배한다. 들뜬 감정조차 차분히 안정을 되찾는다. 최선호의 작품을 마주 본 느낌이다.

작가 최선호(54)는 단순한 화면과 절제된 색채를 바탕으로 한국적 미의식이 배어 있는 서정적 색면 추상회화를 선보여 온 작가다. 그의 작품이 다음 달 10일까지 갤러리 폼에서 전시된다. 얼핏 보면 아무런 감정도 개입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의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보는 이를 명상적이고 사색적인 분위기로 이끌면서 그림으로 빨려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작가는 본래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한데, 미국 유학 시절, "지도 교수의 '단순한 그림을 매우 잘 그린다' 칭찬 한마디에 진로를 바꿨죠.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후엔 여기에 빠졌고요."

익숙한 재료였던 먹의 음영과 농담은 색과 면의 추상작업으로 확장됐다. 작가는 "면의 크기는 철저한 계산에 의해 황금분할을 꾀하고 그윽한 색감은 연한 물감을 여러 번 칠하는 방법으로 얻는다"고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의 그림은 서양적 미니멀리즘에 가까우면서도 동양적 깊이가 느껴진다. 겹겹의 물감과 눈에 보이는 붓 자국들. 색과 색 사이의 경계는 색의 대비 효과와 선의 부드러움으로 인해 생생하고 아련히 빛난다. 그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오방색이나 단청의 색조 등 한국적인 색상의 미감과 소박하면서도 인간적인 따스함은 바로 그만의 독창적이고 그윽한 이런 색감 때문이리라.

작품 화면의 모서리에 보이는 장식 색(작가는 '성긴 맛'이라 부른다)은 일품이다. 절제된 공간! 이는 그림의 동양적 깊이감을 충만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마치 사람의 손때가 묻어 그 온기가 스며든 것처럼, 세월의 깊이가 차곡차곡 쌓인 골동품이나 고서화, 목가구처럼 말이다. 이로써 그의 작품 속에선 동서양의 만남이 함께 이루어진다.

작가의 미니멀한 그림에서 우리는 격조, 단순함, 그리고 절제를 본다. 수많은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이 절제된 색감으로 표현되고 또 그것으로부터 수많은 빛깔과 울림들이 야기되면서 무한한 상상력을 유발하는 색면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전시 공간에는 2006년부터 시작해 오던 그의 모빌 작품들도 더불어 감상할 수 있다. 옛날 시골집의 문종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멋과 향수가 작가의 작품에서 깊이와 그윽함을 더해 전해질 터이다. ▶최선호 작가 초대전 '화가로 산다는 것'=12월 10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우동 갤러리 폼. 051-747-5301. 글·사진=정달식 기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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