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건축하려는 제자에게

졸업을 앞둔 학생이 찾아왔다. 설계를 하고 싶은데 박봉에 잦은 야근…. 계산이 안 나온단다. 이해가 간다. 학제가 바뀌어 건축학과에서 공학을 떼어내고, 5년이나 공부하는데 해마다 배출되는 수많은 졸업생이 갈 곳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수요 대비 과잉 인력 공급은 결국 치열한 경쟁과 저임금의 원인이고, 여기에 양극화는 지역 사무소의 존립마저 위협하는 상황이다. 해줄 수 있는 말이 궁색했다.
처음 설계한 건축물을 완공했을 때 기억이 난다. 떨리는 마음으로 몰래 가서 건축물과 사람들을 훔쳐보았다. 내가 그린 도면이 땅 위에 서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웃고 우는 모습을 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너무 좋아서였다. 너무 고마워서였다. 세상의 건축물을 만나며 때론 나도 모르게 무릎 꿇고 그런 공간이 있어줘서 반갑고 부러워한다. 내가 구상한 건축 계획안을 설명할 때, 초롱초롱 눈망울을 밝히며 꿈에 겨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내가 그려낸 도시의 비전에 참 그랬으면 좋겠다고 내 손을 꼭 잡아준 사람들이 있다.
내가 지금도 건축과 도시설계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타인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소중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내가 받았고, 누군가와 나누었던 그런 감동의 기억이 너무 귀해 그 벅차오름을 계속 느끼고 싶고,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내가 그 속에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상황은 힘들고 변화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나의 사랑하는 제자에게 함께하자 손 내미는 것은 지금 여기에도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할 만한 꿈과 일이 있고, 도전과 위로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오늘도 난 무덤덤한 세상에서 사소한 일상의 의무와 숙제들을 장편소설의 수많은 페이지처럼 쓰고 있다.
김승남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