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술 문화, 도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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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적으로 술을 잘 못하는 나에게 한 잔은 웬만한 남자 한 병인데, 타인은 이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사회에서 남성성과 리더십의 상징이 된 술을 못하는 것은 사회적 성공에 차·포 떼고 두는 장기 같고, 부산에서 '우리가 남이가' 하며 건네주는 폭탄주를 거절하는 것은 하나 됨을 거부하는 불경스러운 선전포고 같다. 점심, 저녁 가리지 않는 술자리와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권주는 나의 일상을 멍청하고 아프게 만드는데, 참 잘 버텨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울 뿐이다. 자꾸 하면 는다는데 왜 이 고통을 늘려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360만 메트로폴리스 부산의 도시공간은 폭탄주 같다. 맥주, 소주, 양주, 되는대로 버무려 다이내믹하게 섞어 음주를 강요한다. 거창한 건배사가 오가지만, 사실 딱히 이야기할 만한 프로그램과 스토리가 없다. 언제나 최고, 최대…. 크고 강한 것이 미덕이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해독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도시공간은 허영이고 세금 낭비처럼 보인다. 필요한 것은 내 주변 가까이에 내 수준에 맞게 누리고 싶은 일상 공간인데 제공되는 것은 늘 더 세고 독한 프로젝트고, 우리는 늘 그 앞에서 초라하다.

그렇다고 술자리가 싫은 건 아니다. 술이 인간관계의 좋은 매개체라는 것도 인정한다. 내가 바라는 건 그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함께할 수 있는 배려의 문화인데, 한계를 강요하는 일방적 술자리는 의도적으로 피하게 된다. 할 수 없이 난 오늘도 비주류나 소주류 친구들과 마주앉아 관용과 공존이 함께하는 다양한 도시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장애우, 다문화 가정, 새터민, 도시빈민, 노숙자, 노인, 여성,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도시 공간.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도시공간에선 대단한 주당이었음을 깨닫는다. 미안해진다. 술 문화도 도시문화도 이젠 조금 달라질 때가 되었다.

김승남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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