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땡초, 사전에 없는 말
'대통령이 국민들과의 약속을 이렇게 쉽게 뒤집을 수 있나. 꼬시래기 제 살 뜯어 먹는 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동남권신공항을 백지화하자 부산 자갈치시장 상인 한 분이 부산일보에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한데, '꼬시래기'라…. 사전을 보자.
'명사. 식물. 홍조류 꼬시래깃과의 해조(海藻). 검은 자주색 또는 어두운 갈색으로 낭과(囊果)가 사상체 전체에 나며, 우뭇가사리와 함께 한천을 만드는 데 섞어 쓴다. 세계 각지에 분포한다.'
아니, 이러면 이상해진다. '제 살 뜯어 먹는'이라 했으니 동물인 듯한데, 사전 풀이에는 '해조'라 돼 있다. 해조면 바닷말이 아닌가.
여기 나온 '꼬시래기'는 바닷물고기 '문절망둑'의 경상도 방언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문절이, 망둑이, 망동어, 문주리, 운저리' 등으로 부른다.(부산에서는 풀망둑을 꼬시래기라 부르기도 한다.) 문절망둑은 식욕이 워낙 왕성해 동족의 살도 먹어 치울 정도. 그래서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하다 더 큰 손실을 자초하는 한심한 행동'을 가리켜 '꼬시래기 제 살 뜯기'라고 한다. 하여튼 '제 살 뜯어먹는' 저 꼬시래기는 사전에 없다.
이처럼, 자주 쓰는 말이지만 사전에 없는 말이 드물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말이 '땡초'. 요즘 매운 음식에는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땡초가 사전엔 없는 것이다.(대신, '아주 매운 고추'라는 뜻으로 '땡고추'가 올라 있다.) 아마 나중에는 실리겠지만, 어쨌거나 아직까지는 그런 형편인 것이다.
'일발필도의 펀치력을 지닌 원성진은 별명이 '원 펀치'다./백핸드 쪽의 약점에도 불구, 포어핸드 쪽에서는 '일발필도'의 한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앞쪽은 바둑 기사, 뒤쪽은 탁구 기사인데, 두 신문기사에 함께 나오는 '일발필도'도 사전에 없는 말이다. 박영한의 소설 <머나먼 쏭바강>(1977년)에도 '하노이의 당 정치국은 일발필도(一發必倒)를 노리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오고 1960년대 신문에도 <一發必倒(일발필도)의 强打(강타)>라는 제목이 나온다. 그러니 갑자기 생긴 말은 아닌데도, 사전에는 실리지 않은 것.
물론 사정이야 있겠지만, 오늘 우리가 쓰는 말을 생각하면 사전에 '땡초'는 없고 대신 '땡고추'가 실린 게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국립국어원이 좀 더 열심히 해 줬으면 싶은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진원 기자 jinwo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