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탱크·'고무 다라이' 그 속에 부산 담았다
주택 옥상마다 있는 파란 물탱크. 대상화해 볼 수 있는 지점이 있었기에 부산을 대표하는 기표로 자리 잡았다. 부산일보 DB부산을 상징하는 풍경은 파란 물통과 빨간 '고무 다라이'다?
경성대 문화발전연구소(소장 박훈하·국문과 교수)가 부산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매년 풀어내는 부산발전연구원 부산학 교양총서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펼쳐 놓았다. 최근 발행된 2013 부산학 교양총서 '마이너리티, 또 다른 부산의 힘'에서 연구소는 비주류, 혹은 'B급', 마이너리티로 표현되는 부산의 다양한 문화와 풍경을 자세히 관찰해 담았다.
그러면 파란 물통과 '고무 다라이'가 부산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인 이유는 무엇일까? 책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렇다.
경성대 문화발전硏 새 책
마이너리티로 푼 문화·풍경
획일성 뒤엎는 자율에 주목
부산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보이는 주택의 옥상에 하나같이 자리 잡은 푸른색 물탱크. 급수시설이 완벽하지 못했던 과거, 물이 잘 나올 때 미리 받아 둬야 했던, 서민들의 생활필수품이었다. 수돗물이 곧바로 각 가정 수도꼭지에서 콸콸 흘러나오는 지금은 수질관리도 어렵고 원래의 쓸모가 없어진 데다, 심지어 옥상 경관을 해치는 주범으로 몰린다. 다른 도시에도 널린 물탱크가 유독 부산의 상징으로 부각되는 이유는 산복도로라는 지리적 특성에다 햇빛 투과율을 낮추기 위해 천편일률적으로 제작된 파란색 물탱크의 결합 때문이다. 주변에 고층 건물을 둔 도심 주택가에서도 국제행사를 앞두고는 경관 정비의 주된 대상으로 꼽힌다. 이제 파란 물통은 보여 줌과 가림의 총성 없는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문화정치의 전쟁터가 되었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옥상 물탱크와 함께 지상의 자줏빛 고무통은 산복도로 좁은 골목길의 풍경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봄에는 이불을 세탁하는 대형 빨래통, 여름에는 꼬마들의 물놀이장, 초겨울에는 김장을 위해 배추를 절이는 통으로 전천후 변신을 하던 이 고무통은 이제 편리한 세탁기와 워터파크, 포장김치에 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이 고무통에 사람들은 질긴 생명력을 불어넣어 이 통에서 채소와 화초, 나무를 키워 낸다. 파란 물통 역시 일부는 배를 갈라 흙과 거름을 채워 텃밭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책에선 이를 '녹색 복음'이라고 표현했다. 필자는 수정동 영주동 대청동 산복도로 골목을 돌아다니며 그곳 사람들의 '자율'의 힘을 절감했다. 결국, 주변의 하찮은 물질을 자유자재로 변신시켜 끊임없이 쓸모를 찾아내고, 상식을 뒤엎는 원동력은 '자율'이었다는 얘기다.
책은 부산의 지리가 만든 환상적인 서민문화로 포장마차와 마을버스, '달러 아지매'도 꼽았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나머지 두 부분은 지역의 모순을 끌어안고 함께 문제를 풀어 가려고 자생한 공동체들과 대중의 일상적 삶을 표현하는 문화예술활동을 폭넓게 다뤘다.
그렇다면 왜 마이너리티인가? 서울이라는 환상을 좇아 획일성이 압도하는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끊임없이 환상에 대한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이 책은 '마이너리티'로 명명한다. 서문에 "소수자의 삶을 통해 다수자의 폭력을 드러내 보여 주기 때문에 예술은 진정성과 아름다움을 담보할 수 있고, 이로써 우리 사회의 건강한 윤리성을 회복한다"고 쓴 것이 마이너리티에 대한 주목의 이유가 될 듯하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