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대법원의 개명 통계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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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변호사

직장에서 동료가 자신의 아내와 '여보, 허니(honey), 달링(darling)' 등의 애칭을 사용하면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자네는 부인이랑 사이가 엄청 좋은가 봐, 다양한 애칭을 사용하면서 대화를 하네'라고 하였더니, 그 동료는 '아내 이름이 기억이 안 나'라고 답하였다.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손에서 김치 국물 냄새 나는 아줌마를 더욱더 슬프게 하는 이야기이다. 이 아줌마도 여고시절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라는 김춘수의 시 '꽃'을 외우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름이 없고, 단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 옆집 아줌마가 되었다.

이름은 나만의 고유성과 단일성 가져

대법원은 지난달 26일부터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을 통해 출생, 개명 시 가장 선호하는 이름 순위, 지역별 출생, 사망신고건수 등 국민의 관심이 높은 가족관계등록 통계항목을 선정해 공개하고 있다. '다문화가정의 출생 신고건수' '국제혼인신고 건수' 등 모두 17종의 다양한 통계를 정기적으로 제공하며, 귀화자의 국적 순위와 같은 특이한 통계정보는 정기적으로 주제로 선정해 제공할 예정이다.

통계정보에 따르면 출생신고 시 가장 인기 있는 남아 이름은 '민준, 서준, 주원', 여아 이름은 '서윤, 서연, 민서' 순이었다. 그리고 개명 시에는 남자가 '민준, 도현, 정우', 여자는 '서연, 지원, 수연'이라는 이름을 선호하였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 여직원들의 열광 속에 마친 인기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도민준'이었던 것이 기억났다. 지난 4월 한 달간 개명신청 현황을 살펴보면, 남자가 4천803명, 여자가 9천517명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배 가까이 많았다. 역시 여자가 이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같으며, 아줌마 아니 할머니가 되어서도 더 예쁜 이름, 유행하는 이름으로 바꾸려는 모습을 종종 본다.

무릇 이름이란, 나를 대신하는 표현으로, 나를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고유성과 단일성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이름에 대한 애착이 유독 심한 편이라, 대역죄인과 이름이 같으면 문중회의를 열어 개명을 할 정도였고, 처참한 운명을 가진 사람과 이름이 같기만 해도 종이에 그 이름을 적어 태우거나 땅에 묻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은 통상 부모에 의해서 '부모의 바람'을 담아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그 과정에 이름의 주체인 '자신의 바람'은 들어갈 여지가 없다. 이전에는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부모가 준 이름을 평생 소중히 여기었지만, 이제는 이름 역시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여,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저 없이 바꾸고 있다.

이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가족관계의 등록에 관한 법률에 따라 주소지를 관할하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과거에는 법원이 개명사유로 '사주에 안 좋다'는 등의 성명 철학상의 이유를 든 신청은 잘 받아 주지 않았다. 그런데 대법원이 2005년 11월 16일 '개명을 허가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고 범죄를 기도 또는 은폐하거나 법령에 따른 각종 제한을 회피하려는 불순한 의도나 목적이 개입되어 있는 등 개명신청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개명을 허가함이 상당하다'고 결정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결정 이후 매년 10만 명 이상 개명신청을 하였고, 법원의 개명신청 인용률도 94.1%가 넘는 등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중요시하고 있다.

개명 허가 개인의 행복추구권 중시

사람들은 누구나 부르기 좋고 의미 있는 이름, '무병장수 부귀영화'의 욕망을 이름에 담고 싶어 한다. 그래서 혹시나 인생이 무언가 모를 이유로 자꾸 꼬이고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나를 상징하는 중요한 표지인 '이름'을 바꿔서라도 그 위기를 탈출해 보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개명을 하였다가, 다시 다른 이름으로 개명을 신청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위기와 전환은 단지 '이름'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위기를 극복하려는 자기 자신의 강한 의지와 성실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랜만에, 누군가가 나를 나타내는, '여보, 엄마, 아줌마, 변호사'라는 호칭이 아니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 주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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