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시대' 부산을 가족친화 도시로] ② 직장 내 여성 근로자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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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사실 밝히면 업무 수행에 문제가 있는 사람 취급"

학습지 계약직 교사로 6년간 일하다가 출산 직전 퇴직한 박소연 씨. 박 씨는 회사 측으로부터 "임신중절 수술을 하고 계속 일하라"고 강요받았다고 털어놨다. 김병집 기자 bjk@

임신은 축복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당사자가 직장인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려는 남녀 직장인들에게 사업장 내 근로 환경과 분위기가 여전히 비관용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은 임신 사실을 밝히는 순간부터 회사와 동료로부터 '업무수행 능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면서 부당한 처우를 받게 된다.

부산지역 여성 노동자 상담
모성권 침해 관련 29.8%나
임신·출산하면 불이익·해고
"마음 놓고 아이 낳게 해줘야"


부산여성회가 올 상반기 부산지역 여성 노동자 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 모성권 침해 관련 상담은 전체 228건 중 68건으로, 29.8%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임신·출산 뒤 업무상 불이익을 받거나 해고된 사례가 37건으로 전체의 54.4%를 차지했다.

학습지 교사 박소연(36·여) 씨의 사례는 직장 내 차별받고 있는 여성 노동자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직장 다니면서 임신하는 건 죄?

박소연 씨는 2002년부터 6년간 부산의 중소 학습지 H사의 계약직 교사로 일했다. 사원 40여 명 규모의 사무실에는 지국장 1명, 팀장 4명 아래 교사가 10명씩 배속돼 있었다.

박 씨는 근속기간이 늘면서 고참 교사가 됐다. 하지만 2007년 결혼과 함께 첫째를 임신하자 그동안의 평온이 일순간에 깨졌다.

임신한 교사들의 '말로'를 알고 있었던 박 씨는 임신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임신을 빌미로 회사가 좋은 시간대 수업 배정을 배제할까봐 겁도 났다. 하지만 임신 3개월 뒤 몸이 서서히 불자 동료들에게 그만 '들통'이 났다.

상사와 동료들로부터 받은 것은 축하의 말 대신 "수업은 못 빼주니까 아이를 낳기 전까지 일하라"는 싸늘한 반응이었다. 팀장은 "(신입 사원에게)인수인계를 제대로 못하면 길바닥에서 애 낳을 각오를 하라"며 으름장부터 놨다. 동료들은 "보는 내가 답답하다", "그렇잖아도 일손이 달리는 마당에…" 라며 짜증 섞인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교사 수급이 힘든 회사 사정을 모르는 박 씨가 아니었다. 업무 과부하와 박봉 때문에 교사들 대부분이 3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사직서를 냈기 때문. 오죽했으면 회사가 교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입사 후 3개월간 정착하면 보상 차원에서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방침까지 세웠을까.

하지만 '마(魔)의 3개월'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포상여행을 다녀와도 인수인계 과정에서 잠적해 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당연히 회사는 상시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렸다.

한 달에 한 번 신입사원 10명이 들어오면 2~3명이 남고 3개월 뒤 1명이 남는 수순이었기 때문에 기존 직원들이 임신을 해도 대체인력 투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매주 방문 수업마다 박 씨에게 배정된 학생만 80명이었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10시를 넘겨야 퇴근했다. 연차가 쌓여 주 2회만 출근할 수 있게 됐지만, 만삭의 몸으로 일주일에 학생 50여 명을 관리하기엔 너무 벅찼다.

■만삭으로 5㎏ 등짐 진 채 뛰어 … 유산 다반사

학습지와 부교재를 잔뜩 넣은 가방은 무게가 5㎏이 넘었다. 아예 여행용 캐리어를 구입한 동료들도 많았다.

교사들에게는 지역별로 맡을 수업 구역이 배정됐다. 한 세대 수업이 끝나면 아파트 단지 내 다른 세대 수업시작 시간을 맞추기 위해 20여 분 안에 이동해야 했다. 시간을 맞추려면 뛰어야 했기 때문에 바퀴가 달린 캐리어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다.

결국 임신한 교사들은 부른 배를 감싸안고 5㎏짜리 가방을 등 뒤로 짊어진 채 뜀박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9~10세대를 방문하면 총 90여 분을 걷는 셈이었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병원을 제 집 드나들듯 했다. 동료 교사 3~4명이 줄줄이 유산을 했다. 하루는 회사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는데 출산이 임박해 입원해 있어야 할 여자 상사가 전화를 받았다. 이상하다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임신 8개월째였던 상사도 과로로 유산했다는 말을 동료에게 전해 들었다.

'출산 마지막 달까지 일한다'는 것은 직장에서 일상화된 일이었다. 산달이 가까워져도 가벼운 직무로 배치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회사 방침에 감히 이의를 제기하는 교사도 없었다. 인력이 늘 모자라기 때문에 단 하루 쉬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여자 상사 중에는 잔업 때문에 퇴근이 늦어지면 부하직원에게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대신 데리고 와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산 기미가 보여 상사에게 연차휴가를 신청하면 겨우 허락을 받더라도 "반드시 보강수업을 해서 회사 손실을 보전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세대당 수업료는 한 주에 1만 원 정도. 일주일에 4번 수업이 있는데 2번을 빠질 경우 세대당 2만 원 정도의 손실이 발생한다.

하지만 지역별로 수십 세대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교사 한 사람이 빠지면 생기는 수십만 원의 손해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회사는 "무조건 학부모에게 보강수업을 하겠다고 연락하라"고 교사들을 닦달했다.

일부 '간 큰' 교사가 도저히 못하겠다며 버티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경우에도 팀장급 교사가 예외없이 대리로 출강해 할당치를 메웠다.

월급을 못 받아도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출산한 이후에도 할당된 수업 횟수는 무조건 채워야 했다. 결국 박 씨는 산달을 꼬박 채워 일한 뒤 2008년 2월 사직서를 내고 그 다음 달 출산 일자에 맞춰 첫 아이를 낳았다.

■"중절 수술하고 계속 일하라"는 말까지

박 씨는 젖먹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뒤 2009년 9월 또 다른 학습지 회사인 K사에 재취업했다.

이번에는 고등학생까지 맡게 됐다. 고학년들이 학원 수업을 받고 귀가하는 시간에 맞추다보니 밤 12시를 훌쩍 넘겨 퇴근하는 날이 잦아졌다. 집에 돌아가면 산더미처럼 쌓인 시험지 채점 업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과를 마치고 겨우 새우잠을 잔 뒤 오전 6시에 일어나 아이를 다시 시댁에 맡기고 오전 9시까지 출근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박 씨는 같은 해 12월 둘째를 임신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신 1개월이 됐을 때 병원에서 당뇨와 갑상선기능항진증, C형 간염 증상을 보여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망설이던 박 씨는 팀장에게 퇴사 의사를 내비쳤다. "OO선생도 아이를 지우고 복귀한 사례가 있으니 중절수술을 한 뒤 일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상사가 이해해주길 바랐지만 바뀐 건 없었다. 여성이 상사로 승진을 하더라도 자신이 직장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겪은 만큼 이해심이 넓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도 해냈으니 누구든지 할 수 있고, 또 해내야만 한다"며 호언장담했다.

답답한 마음에 동료 교사들에게 하소연하면 "시어머니가 없느냐",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복직해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다.

울화와 분노가 치밀었지만 더 이상 버틸 체력도 바닥났다. 주위 사람들은 "일을 하려면 몸 관리를 제대로 했어야지"라는 핀잔과 함께 혀를 찼다. 결국 박 씨는 재취직한 지 4개월 만에 다시 품 속에서 사직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현재 집에서 두 아이를 돌보고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일하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면 '일하는 엄마'에게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모성권을 억압하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박 씨는 "정부는 말로만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맘 놓고 자식을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특별취재팀=김현아·윤여진·김경희 기자

srdfish@busan.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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