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파 엘리트들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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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서울에서 열린 2015 세계 유학 박람회장의 유학상담 모습. 2012-13년도 미국 유학생 수는 중국과 인도에 이어 한국이 3위를 차지했다. 인구 비율로 환산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연합뉴스

교수님은 안타까웠다. 부임하신 지 15년이 넘으셨건만 서울에서 KTX를 타고 출퇴근하셨다. 어째 신림동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본인이 좋으시면 그 뿐일 텐데 늘 관악캠퍼스에 있는 학생들과 우리를 비교하며 핀잔을 하셨다. 핀잔과 구박에 지친 신입생이 고학생이 되면, 본인은 간절히 바라시지만 출신 학부 때문에 관악에 입성하지 못할 거라고 수군거렸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안쓰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학시절 영어 제대로 안 되고
학문적·인종적 이방인 생활
국내선 유학 후광 업고 영향력
폐쇄적 학벌주의만 강화


기억을 더듬으니, 정작 현재 한국 사회가 고민하는 소선거구제, 대선거구제의 장단점은 잘 모르면서 30년 전 미국의 선거제도는 외웠던 모습이 떠오른다. 20년 전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교수님의 수업이었다. 당시 박사 논문 주제가 '10년 동안의 미국 선거제도의 변화'였다. 교수님 입장에선 본인이 가장 잘 아시는 걸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건데, 수업이 끝나고 나니 '저기 저 미국을 보아라'라는 화살표만 머리에 남았다.

지배받는 지배자 / 김종영

주변부의 삶이란 이렇게 고달픈 것이다. 착근하지 못하고 부유한다. 그곳이 유통업계가 아니라 학계이기에 문제는 심각해진다. 대학은 담론을 생산하는 주요기구다. 주류의 질서를 후발 주자에게 전달해주는 지식 유통업자들이 학자로 명명되고 기득권을 갖기 시작할 때 우리의 지적 질서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둥둥 떠다닌다.

'지배받는 지배자'에서 저자 김종영은 미국 유학파 엘리트가 한국과 미국 사이에 어떤 상황과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세밀하고 꼼꼼하게 분석한다. 15년의 기간을 둔 인터뷰를 통해 왜 미국에서 공부하는가, 그리고 그들이 획득한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살핀다. 미국 유학은 한국의 지식 엘리트 계급에 진입하기 위한 도구이자 동시에 한국의 남성 우월주의·폐쇄적 학벌주의·유교적 위계질서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와선 한국의 대학을 개혁하지 못하나. 이들은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 간의 격차로 인해 자신의 지위를 누린다. 유학 시절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학생이었고, 학문적·인종적으로 주류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방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국에 돌아와선 미국 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 생존을 도모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국 대학이 가진 우수성의 후광 효과로 자신의 연구 성과는 빛을 발한다. 저자는 '트랜스내셔널 미들맨(국가를 넘어서는 중간자)'로 이들을 명명한다. 하지만 이들이 경험한 간극을 다른 계층이나 집단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편협함이 아니라 이 땅의 학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포용성을 가진다면 우리 대학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미국과 한국의 자리에 서울과 부산을 넣어도 이물감이 없다. 켜켜이 형성된 종주-식민 사이에서 고개를 드느라 목이 아플 지경이다.

"네가 발 딛은 자리를 외면말고, 포기 말라!"

내 자리에서 뿌리내리는 방법을 지도해 주는 참스승을 만나고 싶다. 김종영 지음/돌베개/318쪽/1만 6천원. 조소희 기자 s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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