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에세이] 서당과 학교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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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동네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운 일이 있다. 주경야독하는 아버지는 서당 일을 돕느라 늘 새벽 일찍 나가셨고, 우리 집안은 서당교육을 학교 교육보다 우선했는데 나는 그 끝 세대다.

아직 컴컴한 한겨울, 먼 고을에서 온 어른들은 희미한 등잔불에 열심히 글을 읽다가, 몸이 얼어 자습실에 들어서는 날 얼른 품에 안고 녹여 주곤 했다. 어른들은 서당공부를 보람 있어 하는 듯했으나, 어린 나에게는 참 재미없고 힘든 일이었다. 한글을 먼저 알았더라면 다르겠지만, 글자도 뜻도 모르는 천자문을 할머니의 염불과 함께 입으로만 다 외웠던 기억이 있다. 언어는 계속 활용하지 않으면 곧 잊게 된다는 것도 체험했다.

뜻 모르고 천자문 외우던 서당
한글 즐거움 깨친 학교와 대조적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안 될 말

그 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천사 같은 선생님과 쉬운 한글은 어린 나를 다른 세상으로 살게 했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나 내가 열병을 앓으면서 이도 두 달이 못 돼 끝나고, 방 안 이불 속에서 학교를 마음으로만 그리며 지냈다. 이미 두 동생을 열병으로 잃었던 나는, 과연 나아서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운명의 세월을 한 달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낮, 꿈속에서도 그리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렸다. 문구멍으로 뜻밖에도 선생님이 보였다. 나는 얼른 이불을 쓰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자는 척했다.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이 높은 열의 내 이마에 더 진하게 전해 왔다. 세월은 흘러 반세기가 훌쩍 넘었지만, 그때 선생님의 따뜻한 온기를 지금도 느낄 수가 있다.

요즘 논란이 되는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함께 쓰는 문제와 맞닥뜨리면, 어릴 때의 이런 두 체험이 날 한글만의 말글살이로 주저 없이 이끌리게 한다.

이제는 한자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과 도구가 잘 개발되어 있지만, 그때 코흘리개에게까지 힘들게라도 가르치고자 애쓰셨던 서당 훈장님은 큰 학자요 선비셨다. 당시 한자의 지위나 비중을 생각하면 절로 흠모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어 남긴 문집의 시문을 가끔 붓으로 써 보기도 한다. 또 어려운 세월을 살며 한학을 좋아하셨던 아버님의 문집을 들추기도 한다. 선고께서는 공맹의 학문으로도 사회를 교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계셨다. 그러면서도 한글 문화행사에 제자들과 꼭 오셨다. 시대의 변화를 잘 아신 터가 아니었겠는가 싶다.

오늘날 지구촌 생활과 과학의 발달은 이미 한글만을 필요로 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한자나 한문은 전문화하여 교육하는 게 옳고, 초등학생 등 한자 교육의 일반화는 훤하게 열릴 수 있는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일이 될지 모른다. 나의 어릴 때의 경험도 어떤 사물을 보거나 의미를 찾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고 시기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한자 교육 일반화는 명분도 실리도 이제는 얻기 어렵다. 마치 쌀에 모래를 섞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지금 쓰이는 많은 한자 말은 빨리 쉬운 우리말로 바꾸고, 홍수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정보를 한글의 과학성으로 이끌면, 한글의 새 시대를 활짝 열 수 있을 것이다.

엊그제가 한글날이었다. 중국 상하이시의 서예가를 초청해서 교류전도 열었다. 처음으로 우리 선현의 시문을 상해 서예가들이 썼고 한글날 행사도 함께했다. 방문단 모두는 몇 번이고 한글날 한글문화행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고, 단장은 중국에도 한자의 날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짙게 드러내기도 했다.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다. 변화는 결코 겁내거나 어려워할 일은 아니지 싶다.


허경무


부산한글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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