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사진으로 읽는 역사] 43. 들라크루아 '미솔롱기의 폐허 위에 선 그리스'
무너져 버린 독립의 꿈 자유의 상징이 된 여인

가슴을 훤히 드러낸 한 여성이 반쯤 무릎을 꿇고 있다. 그녀의 발 아래에는 부서진 돌조각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그 사이로 누군가의 팔이 피로 물든 돌무덤 사이로 처참히 뻗어 나와 있다. 반면 그녀의 어깨 너머에는 한 흑인 병사가 그 폐허 위에 자신만만하게 서 있다. 관능적이면서도 자유로운 감정의 표현, 이국적인 풍경과 극적 세부묘사라는 낭만주의 화풍을 통해, 들라크루아는 튀르크에 대한 그리스의 독립 항쟁을 여인으로 상징화된 알레고리를 이용해 재현했다.
그리스의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824년 그리스 서부의 도시 미솔롱기는 유럽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중심지가 되었다. 오랜 식민 생활을 뒤로하고 독립을 선언한 그리스의 도전에 오스만 튀르크는 가혹한 보복을 계획했고, 미솔롱기가 그들의 주된 목표 가운데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1년여의 항전 후 미솔롱기의 시민들이 치욕스러운 패배 대신에 도시를 허물고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길을 선택했고, 또 이 전쟁에 참전하여 유럽의 자유정신을 노래한 시인 바이런이 이곳에서 사망했다는 점은, 다른 유럽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점에서 어쩌면 돌 틈 사이로 뻗어 나온 전사자의 손은 바이런에 대한 들라크루아의 애도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또다른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여인의 이미지이다. 이국적인 외모와 의상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성모 마리아를 연상케 한다. 유럽의 도상학적 전통에서 마리아는 인성을 상징하는 붉은빛과 신성을 상징하는 푸른빛의 옷으로 재현되곤 했다. 그런데 간혹 붉은 옷 대신 흰 옷을 입을 경우 이는 '원죄 없는 수태'라는 순수함을 상징했다. 또 양손을 아래로 늘어뜨린 팔 동작은 마리아의 대표적인 기도 자세였다. 그렇다면 들라크루아는 흰옷에 푸른 가운을 걸치고 왼 무릎을 꿇고 반쯤 들어 올린 두 팔로 자유를 호소하는 여인을 통해 그리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기독교적 도상으로 표현했다 해도 무방하다. 터번을 쓴 튀르크 병사와 대조를 이루며, 이교 여인 '그리스'는 이렇게 기독교인으로 재탄생하며 유럽인들의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임병철
신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