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위에 집 짓고 살았다니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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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수도 역사투어 참가자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부산 서구 부민동 임시수도기념관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벽 아래를 보세요. 반듯한 화강암 비석이 보이죠? 무덤 위에 지은 이 집에서 일곱 가족이 살았다고 합니다." "에이~ 거짓말!" 여행조교 '손반장'의 설명에 아이들의 두 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동그래진다.

부산 서구 아미동 산19번지. '비석문화마을'이라 불리는 이 곳은 '피란수도 부산'의 가슴 아픈 역사를 품은 상징적인 공간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가족묘와 화장장이 있던 곳. 6·25 전쟁으로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은 급기야 묘지에 둥지를 틀었고, 그렇게 '무덤 위 마을'이 탄생했다. 화강암으로 된 묘비는 비·바람을 피할 벽과 기둥이 돼주었다. 

부산시·부산관광공사
'피란수도 역사투어' 인기
참가자 70%가 외지인 

비석마을·영도대교 등 
피란 공간 둘러보는 코스
"근현대사 오롯이 느껴져"


마을과 비석을 찬찬히 둘러보던 학사초등학교 5학년 김혁규(12) 군은 "길에서 잠을 자던 피란민들도 많았을 텐데, 무덤 위에라도 집을 지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나마 행운이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6일 봄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투어버스 안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봄 여행주간을 맞아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에서 마련한 '피란수도 역사투어'에 참가한 이들이다. 버스는 비석마을을 들른 뒤 구불구불 좁다란 천마산로를 힘겹게 오른다.

버스 안에서 '이별의 부산정거장' 노래가 울려퍼지고 왼쪽 차창으로 '진짜 부산'의 모습이 펼쳐진다. 일제가 깎아 없애버린 '용미산' 자리에 들어선 롯데백화점 광복점, '깡깡이 아지매'가 일하던 영도 수리조선소도 눈 앞에 펼쳐진다.

피란수도 역사투어 운영사인 부산여행특공대 손민수(손반장) 대표는 "부산은 피란시절을 거치면서 산과 숲, 도시의 경계가 모호한 지금의 풍경이 만들어졌다"며 "부산의 원형에 가까운, 가장 부산다운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일부터 시작된 역사투어는 비석문화마을을 비롯해 임시수도기념관, 부산근대역사관, 영도대교 등 피란수도에 얽힌 장소들을 둘러보는 코스로 짜여졌다. 참가자 중 외지인이 70%, 예약률은 90%를 넘길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서울에서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온 신유이(34·여) 씨는 "피란시절 만들어진 공간에 여전히 주민들이 살고 있다는 게 특히 인상에 남는다"며 "해운대해수욕장 같은 관광지만 둘러봤던 예전과 달리 진짜 부산여행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피란수도 역사투어 버스는 오는 14일까지 운행한다. 피란음식 등 부산 대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맛따라 투어' 셔틀버스, 부산의 근·현대사가 녹아 있는 원도심 곳곳을 둘러보는 특별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된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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