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간 70주년 당신을 응원합니다] '40년째 부평약국 운영' 김정길 약사
부평시장 상인들의 벗… "얼굴만 봐도 어디 아픈지 알죠"
부산 중구 부평동에서 40년 동안 부평약국을 운영해 온 김정길 약사가 진열장에서 약을 집어 들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드르륵 소리를 내는 철문이 세월의 더께를 실감케 했다. 제약사 이름이 적힌 기다란 나무 의자는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그것이었다.
"우리 약국이 좀 오래됐죠. 주인도 손님도 같이 나이 들어가는 것이니 이해 부탁합니다"라며 김정길(72) 약사는 머쓱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의 약국은 개업한 지 40년째. 그가 약국을 한 지는 올해로 50년에 다다른다.
한·양약 다 짓던 70년대 전성기
추운 날엔 약국이 사랑방 역할
부모-아들-손자 3대가 찾기도
돈 벌려고 옮겨 다니는 것 문제
책임감 갖고 건강 지킴이 역 보람
부산 중구 부평약국의 역사는 오롯이 한국 약국업의 역사이기도 했다. 김 약사는 "1970년대에는 약국에서 한약도 짓고, 양약도 지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약국 한쪽 벽면에는 1970~1980년대에 쓰였던 한약재 보관함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1990년대부터는 부산 중구지역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그는 "부평시장 앞에 있으니까 시장 상인들이 배 아프면 달려오고, 감기 기운 있으면 찾아오고 했다"면서 "1990년대를 기점으로 원도심에 사는 사람들이 줄기 시작했고, 시장을 찾는 손님도 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0년 7월 의약분업이 시작됐고, 큰 병원이 없고 개인병원도 찾기 힘든 중구 지역에서 약사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그는 "의약분업은 시작됐는데 시장 골목에 병원도 없고, 나도 자식들도 다 키우고 이제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했다"고 고백했다.
지난 19일 손자를 데리고 부평약국을 찾은 심혜자(69) 씨는 "손자가 6살인데, 우리 아들이 6살 때도 이 약국에 왔다"면서 "그냥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 아프면 여기 오는 게 습관이다"고 말했다. 이날 심 씨는 손자의 입 옆에 난 뾰루지를 두고 김 약사에게 '복숭아 알레르기 같은데 연고를 바르는 게 어떨까' 물었지만 김 약사는 손자의 얼굴을 요리조리 들여다보더니 '알레르기도 수두도 아니니 그냥 집에 가서 찬물로 씻기면 가라앉을 것'이라며 심 씨를 돌려보냈다.
그의 약국에는 중구, 동구, 서구 등 곳곳의 병원에서 처방전이 모인다. 병원마다 처방하는 약의 종류가 다양하니 그가 다루는 약의 수도 많다. 그의 약국을 찾는 이유는 '정'이다.
부평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30년 넘게 한 탁정석(55) 씨가 약국에 들렀다. 김 약사는 이번 달 영양제라며 탁 씨의 이름이 적힌 비닐을 건넸다. 탁 씨는 "워낙 젊었을 때부터 만난 분이니까 내 몸에 대해 잘 안다. 병원도 가지만 어디가 어떻게 안 좋다고 하면 때에 맞춰서 영양제를 주신다. 그냥 믿으니까 그대로 먹는다"고 말했다.
김 약사는 "최근 부평시장이 부평야시장도 열리고 또 통닭가게, 떡볶이가게, 어묵가게 등으로 유명해지면서 북적북적해지는 걸 보는 게 마음이 좋다"고 말했다. 김 약사는 "1990년대 이후 상권이 많이 나빠지고, 동네 자체가 많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2~3년 동안 부평시장의 먹거리가 유명해지고 젊은이들이 많이 찾기 시작했다. 그는 "젊은 상인들도 많이 들어오고, 소화제 찾는 손님들도 느는 걸 보면서(웃음) 시장이 살아나는 걸 느낀다"고 전했다. 그는 이날도 약국에 소화제를 사러 온 관광객에게 "시장 한 바퀴 더 돌고 오세요, 그래도 소화가 안 되면 그때 약 드릴게"라고 말했다.
김 약사는 "요즘 사람들은 돈을 안정적으로 벌고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약사를 하는 것 같다"라며 "하지만 나는 아버지께 약사는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고 성실하게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면 그 보답을 받는 직업이라고 배웠다. 후배 약사들에게도 돈 많이 벌려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보다는 책임감을 갖고 약국을 운영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 약사는 "앞으로 5년 정도 하면 오래하는 것"이라며 "쉬고 싶어도 이 동네 사람들과 맺은 인간관계 때문에 딱 그만두는 게 어렵다"고 전했다.
"늘 그분들이 있어서 제가 있는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중구 부평시장 상인, 중구 구민들을 응원합니다. 그들이 있어서 제가 여기 있는 겁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조소희 기자 ss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