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 언제나 반겨 주는 추억 충전소
입력 : 2016-10-30 19:06:42 수정 : 2016-11-01 11:53:43
'깡~ 깡~.' 한 중년 남성이 지금은 거리에서 찾아보기 힘든 부산 서면의 한 실외 야구 연습장에서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힘차게 야구 배트를 휘두르고 있다.추억은 아름답다. 때로 옛 기억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꾸며진다고도 하지만, 슬프고 괴로운 과거의 기억조차도 세월의 더께가 쌓이면 아련한 추억이 된다. 번화가마다 자리 잡고 청년들의 분기를 '깡~깡~' 소리 내며 받아주던 실외 야구연습장, 자갈치 곰장어집에서 소주를 마시다 급하게 '이용권'이나 동전을 거머쥐고 달려가던 유료 화장실. 연인이나 친구와 하릴없이 다방에 죽치고 앉아 성냥개비를 쌓던 젊은 날은 모두 추억의 동반자다. '멸종 위기'에 놓인 추억의 산실 실외 야구연습장과 유료 화장실, 성냥을 찾아 나섰다.
날아오는 공 직접 치는 실외 야구연습장
10년 전 40곳 지금은 5곳 남짓
자갈치 골목 유료화장실 이젠 무료
충무동 여인숙 골목엔 아직 남아 있어
서면 한 음식점에서는
70년대 전성기 성냥 '추억 선물'도
■여기 있어 줘서 정말 고맙다
뜻밖에 실외 야구연습장은 도심지 서면에 늠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부산 시내 곳곳에 40개가 넘던 실외 연습장은 지금은 거의 사라진 뒤라 더욱 반가웠다. 천원 지폐 두 장을 넣고 타석에 들어섰다. 소심하게 공의 속도가 가장 낮은 '루키 타석'으로 걸어가는데 마이너 타석도 괜찮다고 서면 베이스볼 파크 최민석(45) 대표가 안내해 주었다.
"오빠 화이팅!" 걸그룹의 목소리 같은 응원 구호가 터져 나왔다. 15m 거리에서 스크린 속의 투수가 와인드업하는 순간 공이 세차게 날아왔다.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빗맞는다. 두 번째 공은 파울성이다. 23개의 공 중 직구 15개, 변화구·포크볼·커브 8개가 날아오는데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 예닐곱 번 방망이를 휘두르고 나니 겨드랑이에 땀이 난다.
'깡~~!' 제대로 하나 맞았다. "사장님 잘 치시는데요." 최 대표가 칭찬한다. 우쭐해졌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니 두어 번 헛스윙이 나온다. 하나가 남았다고 스크린에 표시가 된다. 멋지게 홈런 한 방 날려 '명예의 전당'에 사진을 올리고 싶었는데 보기 좋게 허공만 저었다.
낮이라 그런지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구포에서 왔다는 최희송(51) 씨가 "이게 정말 야구다"라고 말했다. 최근에 스크린 야구연습장이 많이 생겼지만, 최 씨는 옛 방식이 좋다고 했다. 실제로 사회인 야구 선수나 프로 선수들도 이곳을 찾는 모양이었다. 프로 선수들의 사인과 사진이 야구장 벽면에 걸려 있었다. 홈런을 친 이들도 명예의 전당에 사진을 올렸다.
서면 베이스볼 파크 최 대표는 "부산 시내에 40여 개의 실외 야구연습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5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 대표도 잠시 야구의 꿈을 키웠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때 남해에서 이사를 와서 지금껏 롯데 팬으로 산다. 야구가 좋아 지난 2014년 이곳에 실외 야구연습장을 만들었다.
"처음엔 건물주의 반대가 심했어요. 임대료나 제대로 받을까 걱정했던 것 같아요." 최 대표는 어렵사리 건물주를 설득하여 야구연습장을 만들었다. 높이 7.5m의 그물망 뒤로 하늘이 뻥 뚫려 있어 상쾌한 느낌을 준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24시간 운영하는 전천후 야구장이라고 했다.
인근 호텔의 일본·중국 관광객들도 자주 찾고 연인은 물론,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향수를 달래러 자주 찾는다는 야구장엔 자기의 구속을 알 수 있는 최신 투수 구속측정기도 있었다.
"손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자주 올 테니 제발 그만두지 말고 오래 하라고요" 큰 벌이는 아니지만, 이런 손님들 때문에 힘이 난다는 최 대표는 추억이 그리울 땐 언제라도 놀러 오라고 말했다.
■돈 받는 화장실 아직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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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금 200원을 내야 이용할 수 있는 자갈치 유료 화장실. |
해외여행을 많이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한결같은 것이 '한국만큼 화장실 인심이 좋은 곳이 없다'는 것. 그래서일까 가끔 외신으로 접하는 '대륙의 화장실'을 보고 대한민국 국민임이 위안이 될 때도 있었다. 라오스에 갔을 때 유료 화장실 때문에 당혹한 적이 있다. 버스를 타고 라오스 북부로 6시간 이상 가는 중이었다. 가도 가도 밀림에, 간혹 닭과 돼지가 자유롭게 뛰노는 마을뿐이었다. 그런데 유독 휴게소에 들를 때면 기사가 유료 화장실이 있는 곳에 차를 대는 것이다. 불과 모퉁이 하나만 돌면 정글인데 굳이 돈을 내는 화장실에 몰아넣었다. 그 나라 물가 치고는 이용료도 싼 게 아니어서 맥주를 줄여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다.
자갈치시장에 유료화장실이 있다는 것은 오래전에 알았다. 혹시 아직도 있나 싶어 곰장어 굽는 냄새가 폴폴 나는 그곳으로 갔다. 기억을 더듬어 화장실 앞에 선 순간 실망감이 확 몰려 왔다. '화장실 무료 개방'이라는 간판에 불이 빤히 들어와 있었다.
'옛 유료 화장실' 바로 앞에서 채소와 곡물을 파는 하동집 김옥련(66) 아줌마에게 물었다. "이거 언제부터 무료입니까?" 아줌마는 "몰라, 한 3~4년 됐나" 하고 대답했다. 화장실을 들여다봤다. '무료개방 2010년 12월 1일부터'란 안내판이 떡하니 붙어 있다.

이곳 공중화장실은 유료였으나 인근에서 가게를 하는 57명이 십시일반 관리비를 부담하여 벌써 6년째 무료로 개방하고 있었다. 인근에서 곰장어 구이를 하는 제주도집 김원택(57) 사장은 "손님들한테 화장실 표를 나눠주는 게 귀찮기도 해서 상인들이 의견을 모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억이 사라졌다.
그런데 충무동 여인숙 골목에 아직 유료 화장실이 있다고 했다. 걸어서 5분 거리인 그곳은 충무노인정 1층에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관리하는 할아버지는 "옛날에는 하루 1만~1만 5000원 벌이는 됐는데 지금은 하루 3000원 벌기도 힘들어 폐지를 줍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구청이 관심을 보여 공공근로 자격이라도 달라고 했는데 묵묵부답이라며 이렇게 해선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근 여인숙에서는 1회 100원의 이용권을 파는데, 일반인은 200원을 받는다. "급하게 볼일을 보고 뭔 돈을 받냐며 욕을 하고 가는 이도 있고, 고생한다면 1000원을 주고 그냥 가는 분도 있지." 인근 새벽시장에 공공화장실도 생겨 유료 화장실은 '멸종' 직전이었다. 추억 충전소가 이대로 사라지는 것일까.
■타고 남은 재가 추억입니다 |
| 감성을 자극하는 성냥을 준비해 놓은 서면 복사골 식당. |
서양 신화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신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네주었다고 한다. 부싯돌이나 나무를 비벼 불을 만들던 사람들은 불씨의 소중함을 알겠지만, 몇 백 원으로 가스라이터 하나 사면 어느 때고 쓸 수 있는 요즘은 다르다.
40대 이상이라면 성냥과 관련한 따뜻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성냥개비 수백 개가 든 성냥갑을 통째로 들로 들고 나갔다가 홀라당 태워 먹는 바람에 혼이 나거나, 젖은 성냥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아까워했던 사연들이다. 성냥은 절약을 강조하는 도구로도 쓰였는데 '독일 사람들은 세 사람이 모여야 성냥을 켠다'는 말로 근검절약을 배우기도 했다. 그런 성냥도 이제는 생일 케이크를 파는 빵집에서나 볼 수 있을 뿐 일반 가게에서는 가스라이터에 밀려 사라진 지 오래다.
성냥의 전성기는 1970년대. 당시 전국엔 300곳이 넘는 성냥 공장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던 경북 의성 성광성냥공장에 전화를 했더니 중국산 저가품 공세에 밀려 2013년 11월에 문을 닫았다.
그런 성냥을 다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토속 한국 음식을 내놓는 서면 복사골 식당이다. 복사골 도상순 대표는 빨갛고 노랗고, 흰 포장의 성냥을 손님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서다. "흔히 식당이면 사탕이나 휴지 등을 드리는데 저희는 성냥을 택했습니다. 제가 시골 출신인 데다 성냥이 추억을 떠올리기에 좋은 물건이잖아요."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아직도 성냥이 있냐?"며 반가워한다고 했다.

도 대표는 원래 전통찻집을 하다가 10년 전부터 식당으로 바꿨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 사용하던 식탁이나, 매실이나 수정과를 담아놓은 옹기가 현재 식당의 고전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성냥이라는 소품도 그 분위기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한꺼번에 성냥 2500개를 주문했던 것 같아요. 아직 좀 있는데 이게 떨어져도 더 구할 수 있겠죠?" 정말 성냥공장이 사라졌나 싶어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찾은 곳은 경남 진영의 경남산업공사. 공장 운영이 잘될 땐 150명의 종업원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10명도 채 되지 않는단다. 이곳에서 아직 성냥을 살 수는 있지만, 이 또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마지막 추억조차 홀랑 타 버릴 것인가.
글=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사진=김병집 기자 b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