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의 진화] 아직도 혼자 읽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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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를 하는데 굳이 함께해야 하느냐고 하지만 그게 아니다. 책 읽기는 분명 혼자서 하는 것이지만 이런저런 이유에서 여럿이 함께 모여 책을 읽기도 한다. 취재 중에 만난 이들은 '마음의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 혹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보겠다는 뜻'으로, 심지어는 '자기 자신만이 아는 심적·지적 바닥을 본 뒤 갈급한 심정으로' 독서 모임을 찾게 됐다고 고백했다. 책 모임 형식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정해진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고전적인 방식뿐 아니라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서 읽는 시간을 가진 뒤 소감을 나누기도 하고, 한 권의 책을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거나 책을 읽고 저자를 초청해 특강을 듣기도 한다. 과학 도서만을 읽거나 고전 중심의 낭독식 책 읽기 모임을 하는 곳도 있다.

지난 18일 특강 차 부산을 찾은 '3i 경영연구소' 김현중 소장은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세미나를 진행하는 '런 앤드 런치(Learn&Lunch)' 방식도 있다고 소개했다.

한 권 정해 읽고 토론하던 방식에서
다양한 형태의 모임으로 변화 발전

각자 다른 책 읽은 후 소감 나누고
과학·고전 등 특정 분야만 읽기도


지면이 좁아서 더 많은 독서 모임 현장을 전하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독서인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전하는 라이프 지면의 발품이다.

■읽고 싶은 책 들고 모이는 '느리게읽기'

지난 7일 오후 2시 부산 남구 문현동의 H오피스텔. 격주 토요일마다 만난다는 20~40대 남녀가 삼삼오오 모여든다. 모이는 시간도 제각각이어서 출입문은 반쯤 열어둔 상태.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각자 자유롭게 들고 온 책을 읽고, 4시부터는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담' 시간이 이어졌다. 보통의 독서 모임이 정해진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부산 느리게읽기' 독서 모임을 이끌고 있는 박은별(부산테크노파크 선박평형수팀 연구원·카카오톡 frombe) 씨는 "요즘은 스마트폰이다 뭐다 해서 많은 사람들이 '빨리빨리'에 익숙해지면서 내면 성찰의 시간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면서 "책 읽기 시간을 통해서라도 자기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 '느리게읽기'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가장 많이 모였을 때 18명이었고, 10여 명이 정기적으로 나온다.

독서 모임 형식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각자 읽고 싶은 책을 들고 오는 '부산 느리게읽기'. 사진=김은영·강선배 기자 ksun@
부산 느리게읽기 모임이 시작된 건 2015년 4월. 느리게읽기 서울 홍대 모임에 참가한 경험이 있던 박 씨가 SNS를 통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책 모임에서 만난 커플이 결혼까지 이어진 경우도 생겨났다.

금융 컨설턴트 강승욱 씨는 "친한 친구들이 있지만 책을 좋아하지 않아서 책 이야기 할 데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최근 11주년을 지낸 '파피루스' 독서 모임도 함께 참여하고 있는 기아자동차 세일즈맨 장현수 씨는 "느리게읽기의 경우, 부담 없는 책 읽기가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한 권의 책과 활동 연계한 내서재 독서클럽

지난 12일 오전 10시 해운대구 달맞이길의 동네 책방이자 북 카페인 '내서재'(대표 이성훈·070-4217-8411) 홀 안쪽에서 영화 상영이 한창이다. 이날은 '내서재 독서클럽-노란정원' 1월 2주 정기 모임이 있는 날. 매달 2, 4주 두 번 내서재에서 독서 모임을 갖는다. 이날은 8명이 모였지만 12명 정도를 예정하고 있다. 지난 연말 예비 모임을 갖고 1월의 주제 도서로 '그 영화, 같이 볼래요?'(씨네21북스, 2013)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간 클림트'(이요재, 2016)를 정했다.

이날은 책에 소개된 영화 한 편을 다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낮 12시를 훌쩍 넘겼다. 류지혜 씨는 "영화를 보고 책과 연관된 이야기를 하는 게 재밌었다"면서 "책 모임도 재미있었으면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내서재 아카데미 팀장도 맡고 있는 김지영 씨는 "영화에 관한 책 읽기는 처음이었는데 책을 통해 보고 싶은 영화를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작은 책방 '채널53'을 운영하면서 과학 독서 모임 '부산사람들과 과학'을 별도로 꾸리고 있는 송지유 씨는 "제가 하고 있는 독서 모임의 자극도 받고 싶었고, 내서재 공간도 보고 싶어서 참가했다"고 밝혔다. 
책과 관련된 영화를 보고 있는 '내서재 독서클럽' 모습.
내서재 독서클럽을 이끌고 있는 김자열 씨는 "'좋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점에선 여타 독서 모임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한 권의 책을 주제로 다양한 활동과 배움을 함께한다는 취지가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 씨는 인문학, 문학, 철학, 심리학 위주의 책을 매달 주제를 정해 독서하고 그에 대한 감상과 비평을 나누며 토론하는 '소요독서회' 대표도 맡고 있다. '소요'는 30~60대의 다양한 연령층과 직장인, 공무원, 퇴직자 등 14명이 모이고 있다.

■책 읽고 저자 초청 특강 듣는 '북모닝부산'

지난 18일 오전 7시 해운대구 우동 동서대 센텀캠퍼스의 한 강의실. 지난해 9월 창립한 '북모닝부산 독서조찬포럼'(회장 장제국·동서대 총장)의 4번째 저자 특강이 시작됐다.

이날의 강사는 '어떻게 생존하고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미래의창, 2016)의 저자 김현중 소장. 김 소장은 100년이 넘은 4곳의 글로벌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과 미국 MIT와 하버드대학 등에서 공부하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개인적 관심을 버무려 두 번째 책을 발간했다. 김 소장은 특히 이번 책에서 지속가능한 성장 기업의 비밀을 '본(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라), 력(결정구를 가져라), 촉(마켓을 확실히 알아라), 파(한계를 깨뜨려라), 복(복원력을 키워라)'이라는 다섯 가지에 '사람'을 더한 이른바 '5+1' 스타 모델을 내세워서 풀어나갔다. 
저자의 책을 읽고 초청 특강을 듣는 '북모닝부산'
경제인, 의사, 교수 등 20여 명의 참석자들은 평일 오전 이른 시간임을 감안해 삼각김밥으로 '조찬'을 대신했다. 일정 금액의 연간 개인 회비를 내서 운영 중인 이 독서 포럼은 일괄 도서 구입과 특강을 한데 묶어서 진행하고 있다.

강연에 나선 김 소장은 "숱한 조찬 모임을 가 봤지만 삼각김밥이 제공되는 건 처음 봤다"면서도 "저자로선 미리 책을 읽고 온 참석자들이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집중력 있게 강의를 듣고 질의응답까지 이어가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전 8시 30분께 포럼이 끝나자 일부는 출근길에 올랐고, 다소 시간 여유가 있는 이들은 자리를 옮겨 30분 정도 저자와 티 타임을 갖기도 했다.

■그 밖의 이색 독서 모임

지정 도서 1권과 자유 도서 1권을 읽고, 분기별로 작가와의 만남을 갖는 '강톡쇼'로 진행되는 '지인성 독서포럼'(회장 박숙희 P&F교육센터 대표·070-8868-9171·다과비 5000원)은 책을 통해 성장하고픈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독서 모임.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전 9시 10분~11시 10분 해운대구 센텀중앙로 T타워에서 모임을 갖는다. 자기계발서 60%, 인문학 시집 등 다양한 분야 40%로 진행한다. 토론 위주 독서 모임이 특징인 만큼 올해부턴 회원 각자가 돌아가면서 15분 발제를 시도할 계획. 21일 열릴 제9회 모임 지정 도서는 '트렌드 코리아 2017'. 차기 강톡쇼는 2월 15일 인재개발연구소 정철상 대표의 '서른 번 직업을 바꾼 남자가 전하는 직업생존전략'을 다루게 된다.

과학 독서 모임 '부산사람들과 과학'(부산사과)의 경우, 매달 첫째 주 토요일 오후 '채널53'(동래구 여고북로 53 1층·051-503-0353)에서 정기 모임을 갖고, 매달 셋째 주 수요일 오후엔 수시 모임을 갖는다. 모임 방식은 매달 책 한 권을 토대로 발제 및 자유 토론이 이어진다. 페이스북 그룹이 있지만 비공개여서 지인 초대로 가입할 수 있다. 21일 오후 2시 35번째 모임에선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본성에 대하여'를 토론한다.

직장인 여성 10여 명이 주 1회 고전을 읽는 '고전을 낭독하다'(대표 박현정·az01256@hanmail.net)도 독특하다. 북구 화명동에 위치한 작은 서점 '강아지똥 서원'에서 '논어' 강좌를 들은 구성원들이 2014년 결성했다. 이후 '도덕경' '장자'를 거쳐 '논어'를 읽었다. 한 줄 한 줄 낭독도 해 보고, 별도의 경비를 모아서 해당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학습도 진행했다. 지금은 자녀들이 겨울방학이라 독서 모임을 잠시 쉬고 있지만 2월부터 다시 열 계획. 고전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환영하지만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30분~9시 모임을 갖는 만큼 화명동 주민이면 좋겠단다.

예술인문교육연구소 지금-여기(비영리 연구단체·대표 최시내·010-3351-2557)가 운영하는 '해마실 책수다'(전업주부 대상이지만 남자도 무방·격주 목요일 오전 10시)와 '달마실 책수다'(직장 맘 대상·격주 화요일 오후 7시 30분·회비 1만 원)는 구성원들이 읽고 싶은 주제를 잡아서 독서 모임을 진행하는데 지난해는 6개월 단위로 주제를 정했다. 2월 7일 '달마실…'은 금정구 장전동 17TABLE에서 김시천의 '논어, 학자들의 수다'를 토론하고, 2월 9일 '해마실…'은 구서동 엔젤리너스에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이야기를 나눈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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