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찾은 길] 히틀러 군수장관의 20년 옥중 자서전 '나치를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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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알베르트 슈페어

"저 엄마 마음은 어떨꼬?" 국정농단으로 수의에 수갑을 찬 채 법정으로 끌려가는 이들의 뉴스를 보시던 어르신이 말을 이으신다. "저렇게 공부 잘해서 대학교수에 국회의원, 청와대까지 갔다고 얼마나 좋아했겠노!"

과연 우리시대 엘리트의 모습은 어떨까?

<기억>이란 책이 있다. 저자는 독일의 중산층 집안에서 유복하게 태어나 존경하는 아버지와 같은 건축가가 돼 최고 권력자의 오른팔이 되어 국가적인 건축과 도시 프로젝트를 맡아 계획하고, 37세 최연소 군수장관으로 세계대전을 이끈 당대 최고의 인재, 히틀러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다. 그는 보다 나은 세상을 믿고 꿈꿨으며 이를 위해 최상의 공간을 계획하고, 그 속에서 국민이 염원하는 시대적 사명을 실천하려 최선을 다했다.

과거 왕이나 교황, 히틀러… 아마도 이 시대의 정점에는 '국가'와 '시장'이 있을 것이다. 아직도 많은 엘리트들은 부름을 받고 달려가 신성불가침의 지침들을 열심히 받아 적고, 배운 지식으로 그들의 일을 대신한다. 때론 검은 거래와 손에 피를 묻히는 일. 곳간을 더 채우고 권력을 키울 수 있다면 법과 제도를 바꾸고 뇌물을 주고받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들까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패전을 예감하고 슈페어는 회심한다. 국내외 점령지 모든 군사시설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종전 후 전범재판에서 잘못을 뉘우친 뒤 나치 장관으로서는 유일하게 사형을 면한다. 그 뒤 20년 수감기간 중 자신의 일생과 특히 히틀러와 함께했던 모든 경험을 회고해 1966년 <기억(Erinnerung)>이란 책을 남긴다.

사람들은 말한다. 자기변명, 합리화, 반성문, 내부증언, 고해성사, 코스프레, 배신… 이라고. 판정은 역사의 몫이라 상투적으로 남겨두자. 하지만 미룰 수 없는 것은 나 역시 매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지금 이 순간 어떤 기억을 남기고 있나?' 

김승남

건축가

서울대 건축학과와 환경대학원, 독일에서 유학하며 건축과 도시설계를 전공했다. 영화 연출, 시나리오 작가, 프로젝트 매니저 등 다양한 경력을 거쳐 현재 ㈜일신설계 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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