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찾은 길] 삶에 대한 겸허함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뜬세상의 아름다움/정약용

'꽃이 진다해서 아름답지 않으며, 꽃이 시든다고 사랑하지 않으랴? 지고 말 꽃이기에 더욱 아름답고, 더욱 사랑스럽다. 집착할 것도 한탄할 것도 없이, 그저 충분히 살고 가면 될 뿐이다.'
이 글귀는 정약용 선생의 저서 <여유당전서> 중에서 서정적인 산문 몇 편을 뽑아 책으로 엮은 <뜬세상의 아름다움>에 실린 내용이다. 책 제목은 '부암기(浮菴記)' 편에서 따온 것으로 '부질없는 세상, 허망한 삶'을 한탄하는 벗에게 보낸 화답이다.
정약용! 지금은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지만, 그의 인생사는 파란만장했다. 조선 최고 개혁 군주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사회 모든 영역의 변혁을 구상하고 실천하는 최선봉에 섰던 그였지만, 정조 급사 후 사학죄인으로 숙청을 당해 가문 전체가 거의 폐족이 되고 기약 없는 유배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개혁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이제야 독서할 시간을 얻었구나. 축복이다"며 마음을 다잡고는 누구도 필적하기 힘든 위대한 저술을 남겼다.
이런 글을 써 내려간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과 비참한 가족. 억울함과 복수심, 세상에 대한 원망. 어쩌면 우리 각자의 마음에 유배된 정약용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인생역전 드라마와 초인적 주인공의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부질없을 것 같은 뜬세상이라도 그 속에서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고 즐기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그의 자세와 마음에서 한없는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달관이나 초월이 아니라, 주어진 내 몫의 생과 삶에 대한 겸허함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일임을 일깨워 준다.
'떠다니다 서로 만나면 기뻐하고 떠다니다 서로 헤어지면 시원스레 잊어버리면 그만일 뿐입니다. 무어 안 될 것이 있겠습니까?… 생각해 보면 떠다닌다는 것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김승남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