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차베스와 마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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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발을 디딘 1492년 이후, 라틴 아메리카는 300년 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19세기 들어 스페인이 힘을 잃기 시작하면서 남미 독립운동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독립운동의 중심에는 시몬 볼리바르가 있었다. 볼리바르는 남미에 그란 콜롬비아를 세웠다. 그러나 볼리바르가 죽은 후, 그란 콜롬비아는 해체되고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 등으로 분리됐다. 베네수엘라도 그중 한 나라였다. 볼리바르가 태어난 땅 베네수엘라. 그래서 나라 이름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이다. 화폐 단위는 물론 헌법에도 남미 해방의 아이콘 '볼리바르'라는 이름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1989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 조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카라카소'라 불리는 도시 빈민과 노동자들의 봉기에서 3000여 명이 희생됐다. 카라카소 3년 뒤, 육군 중령 우고 차베스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 불발로 2년간 수감된 차베스는, 이후 1998년 대통령에 당선돼 14년 동안 집권했다. 대통령이 된 차베스가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전략으로 쓴 것이 제헌의회였다. 볼리바르주의자 차베스는 제헌의회에서 제정한 '볼리바리안 헌법'을 무기로 구체제를 청산했다. 이웃 볼리비아와 에콰도르 등 좌파 정권들이 차베스의 제헌의회를 따라 했다. 차베스의 분배 정책은 포퓰리즘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몇 주 동안 계속된 시위로 정치적 위기에 처한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제헌의회를 통해 반전을 노리고 있다. 버스 운전사 출신으로 노동운동가였던 마두로는 쿠데타로 수감된 차베스를 면회하면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차베스 면회 때 만난 차베스 법률팀 변호사 실리아 플로레스와 결혼했다. 마두로는 차베스 정권에서 국회의장, 외무장관,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됐다.

마두로가 경제난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꺼낸 카드가 차베스의 제헌의회다. 반정부 인사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다. 우파 야권이 다수인 의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제헌의회를 강행한 마두로의 베네수엘라는 혼돈 속에 내전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세계 1위 원유 매장량을 가진 베네수엘라. 고유가 시대 차베스와 저유가 시대 마두로, 두 볼리바르주의자의 제헌의회를 둘러싼 평가도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춘우 편집위원 bom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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