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탐식법] 웃기는 짬뽕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요산문학관에서 근무하는 날은 중국집 음식, 특히 짬뽕을 자주 사 먹는다. 방문객이 뜸한 점심시간, 후루룩거리며 짬뽕을 먹다 보면 문학관에 찾아오는 짐승들이 보인다. 먹이를 찾고 영역 확인을 하러 오는 고양이와, 새끼를 키우느라 주변에 오는 짐승들을 경계하는 까치가 자주 다툰다. 짬뽕을 다 먹고 문밖에 그릇을 내놓으러 가는 길에 그들의 싸움을 지켜본다. 까치는 문학관 밖으로 나갈 때까지 고양이를 쫓아다니며 공격한다. 먹이를 찾아 먹던 고양이는 까치가 귀찮은지 급하게 자리를 뜬다.

사람 많은 이 도시에는 짐승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얼마 없어 문학관 자리싸움이 치열하다. 나는 둘 중 한쪽의 편만 들어줄 수 없지만 문학관이 시끄러운 것은 곤란하다. 고양이가 오랫동안 문학관 한 자리에 있으면 다른 자리로 가도록 슬쩍 유도하고 까치가 긴 시간 동안 경계하면 손뼉을 치며 다른 자리로 보낸다. 다들 사는 일이 고되다. 짠한 마음에 "너희들, 밥이나 먹고 다니냐?" 물으며 사료를 놔두면 양쪽이 번갈아 가며 밥을 먹고 간다.

우리가 말하는 '짬뽕'이라는 이름은 일본 나가사키 지방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개화기의 나가사키에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과 항구 노동자가 많이 살았다. 그들 모두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다. 중국 푸젠성을 떠나 일본에 자리잡고 나가사키 짬뽕을 개발한 식당 주인은 자신을 찾아 오는 가난한 중국인 동포들에게 '밥 먹었냐?'라고 인사를 하곤 했다. 우리나라 인사말에 '식사는 하셨습니까?'가 있는 것처럼 가난한 시절 먹는 일은 가장 큰 관심사였을 것이다. 이 '밥 먹었냐?'는 질문은 중국말로 '츠판'인데 푸젠성 사투리로 '샤뽕'이라고 한다. 이 샤뽕을 음식 이름으로 생각한 일본 사람들은 그것을 '잔폰'으로 불렀고 이 음식이 한국에 건너와서 짬뽕이 된 것이라고 한다. 짬뽕이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음식이라니, 맛있고 멋있는 이름이다.

6개월 전부터 생리 주기가 들쑥날쑥하더니 이유 없이 두 달 가까이 생리를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생리를 할 때도 생리통이 심해지고 생리혈 양이 현저히 줄었다. 대상포진과 위경련을 앓던 때라 몸이 힘들어 그렇겠거니 넘겼는데 뉴스를 보고 원인을 알게 되었다. 유해물질이 든 생리대가 문제였다. 뉴스에 자주 언급되던 상표의 생리대는 아니었다. 한 대형마트의 자체브랜드(PB) 상품을 썼는데 그 제품 제조사가 문제의 생리대 제조사였던 것이다. 남편과 나는 그 마트의 고객센터에 찾아가 가지고 있던 생리대를 보여줬다. 직원은 제품의 환불 절차를 알려주었고 우리는 현금으로 4300원을 받았다. 환불을 받았는데 허망한 기분이 들었다. 마트 앞 중국집에서 4500원짜리 짬뽕을 사 먹었다. 먹으면서 불편한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 나는 이 4300원을 받는 일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랜 기간 내 자궁이 흡수한 그 나쁜 화학물질은 어딜 가서 환불받아야 하나? 죄송하다고, 몸은 괜찮으시냐고, 그런 진심 어린 안부를 누군가 물어봐 주길 원했나보다. 어쩔 수 없지. 그저 스스로 안부를 묻는 마음으로 짬뽕을 먹을 수밖에. 중국에 없는 중국집 음식, 그래서 '웃기는 짬뽕'을 먹는다. 여성(사람)이 없는 여성(사람)용품, 그래서 '웃기는 생리대'를 되판 돈으로.

dreams0309@hanmail.net


이정임


소설가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