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준 칼럼] '적폐 청산'인가 '정치 보복'인가
/유명준 논설위원

현재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안보도 민생도 아니다. 바로 '적폐 청산'이다. 12일 시작된 국회 국정감사의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이미 여야가 내뿜는 말 대포의 포연이 자욱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적폐 청산이 곧 개혁'이라거나 '과거 정권의 헌정 유린과 국기 문란을 바로잡는 마지막 기회'라며 지도부가 최전선에 나서 공세를 이어 가고 있다. 반면 야당은 '정치 보복'이라거나 '지금이 그럴 때냐'며 반발하고 있다.
권력기관 여론 조작 등 충격적
한풀이·정략적 적폐 청산 안 돼
정치 공방 되면 본질 흐려져
'나라다운 나라' 만드는 게 목표
협치와 국민 통합 염두에 두고
여론몰이 대신 치밀한 전략을
사실 지금 언론과 정치권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과거 정권의 적폐를 보면 기가 막힌다. 특히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및 기무사를 동원한 댓글 공작과 민간인 사찰 등의 여론 조작과 정치공작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야당은 전임 정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 주장하며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적폐도 같이 털어 보자고 역공에 나서지만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정치 보복이란 잘못이 없는데도 잘못한 것처럼 꿰맞춰 몰아갈 때에나 가능한 표현이다. 문제가 있는데도 그냥 덮고 넘어가자는 것은 그와 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특히 권력기관의 여론 조작과 정치공작은 국가 권력이 가하는 야만적 폭력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근본 이념까지 흔들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적폐 청산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해도 지금 적폐 청산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진정한 적폐 청산이 가능할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굳이 여당이 대놓고 맨 앞에 나서 적폐 청산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야당일 때라면 국회가, 그리고 국정감사가 정부의 잘못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무대다. 그러나 이미 정권이 교체된 상황이다. 민주당은 지금 야당이 아닌 여당이다. 과거 정부 각 부처에서 저지른 잘못을 드러내고 이를 바로잡는 것은 현 정부에서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면 수사를 통해 처벌하면 된다. 장관도 국정원장도 검찰총장도 모두 현 정권에서 임명된 사람들이다. 굳이 나설 필요가 없는데도 여당이 나서면 결국 야당과의 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공방이 계속되다 보면 적폐 청산이라는 본질은 간데없고 적폐 청산이냐 정치 보복이냐 하는 프레임만 남게 된다.
적폐 청산을 하는 데 인적 청산이 빠질 수는 없다. 과거의 잘못을 드러내 바로잡는 과정에서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적 청산만이 적폐 청산의 전부일 수도 없다. 과거에 대한 책임을 묻자면 그 대상의 대부분은 전 정권의 핵심일 것이다. 그런 인적 청산이 전 정권, 전전 정권과 현 제1야당을 포함한 보수 진영의 치부를 드러내는 망신 주기가 돼 버리면 한풀이 정치 보복이라는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그런 적폐 청산이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포함한 정치적 이익을 누리겠다는 정략에 불과하다는 지적에도 할말이 없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당의 일은 적폐 청산과 개혁을 입법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여당만으로 국회 운영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보수진영, 제1야당을 적폐로 몰아붙이면서 협력을 얻기는 불가능하다. 적폐 청산 과정의 일부일 뿐인 인적 청산이 자칫 목표처럼 변질되면 진짜 청산과 개혁은 길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여당의 적폐 청산 드라이브에 지지자들은 환호할 수 있다. 그러나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내 반발하지는 못해도 속으로 반감이 더욱 깊어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100% 대한민국', 지지자도 반대자도 포용하는 통합은 물 건너간다.
결국 왜 적폐 청산을 하는가의 질문으로 초점이 모아진다. 정부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는, 나라다운 나라를 위한 인적·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 적폐 청산의 진정한 목표일 수밖에 없다. 그를 위해서는 목소리를 높이고 여론몰이를 하는 것 이상의 치밀한 전략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집권 초반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속전속결로 적폐 청산을 해치우고 싶은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숨에 해결될 것 같으면 적폐가 아니다. 긴 호흡으로 차분하고 냉정하게 해야 한다. 급하게 하려면 반드시 역공을 받게 마련이다.
joo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