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서 끌려간 도공 후예, 日 사세보市 신사서 신으로 모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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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초량왜관연구회 동아시아 해양교류 역사탐방 동행기

조선 도공의 후예가 신으로 모셔져 있는 사세보시 미카와치 도예 마을 '도조(陶祖)신사' 입구.

부산초량왜관연구회(회장 강석환)는 동아시아 해양교류 역사탐방 행사로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1일까지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 히라도시(平戶市)와 사세보시(佐世保市)를 답사했다. 초량왜관과 히라도는 각각 중세 조선과 일본의 개항지로서 국제 해양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곳이다. 본보는 이번 역사탐방 동행 취재를 통해 16세기 서양과 교역한 일본 무역항인 히라도의 유적지들을 둘러보고, 조선 도공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사세보의 도예 마을을 탐방해 양국 문화교류의 역사를 추적했다.

히라도는 16세기 서양 선교사들의 포교 활동과 함께 해외 무역항으로 번성했던 중세 일본의 국제도시였다. 히라도성은 시내와 히라도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축조돼 있다. 인근의 마쓰우라 사료박물관에는 이 지역의 대외무역과 기독교 관련 자료들이 전시돼 있고, '조선부인도'가 소장돼 있어 상상력을 부채질한다.

일 나가사키현 히라도시
16세기 번성 일 국제도시
네덜란드·英 상관 흔적 남아

사세보시 미카와치 도예 마을
조선 영향 백자 생산지로 유명


예수회 소속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신부는 일본에 최초로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선교사이다. 1550년 포르투갈 상선이 히라도에 첫 내항했을 때 이미 일본에 들어와 있던 그는 1개월 남짓 히라도에 체재하면서 100여 명에게 세례를 줬다고 한다. 히라도에는 사비에르 신부의 선교 활동을 기념하는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이 교회가 세워진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은 '교회와 절이 함께 보이는 풍경'으로 인기가 높다.

히라도에는 1609년 네덜란드 상관이 설치되고, 1613년 영국 상관도 설치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듯 히라도에는 네덜란드 상관 터와 그 부속시설인 담장과 우물, 부두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히라도 시청 앞에는 영국 상관 유적비도 서 있다. 현재 볼 수 있는 네덜란드 상관 건물은 1639년 완공됐던 거대한 석조 창고를 복원한 것이다. 대항해시대, 서양 지도에 '피란도(Firando)'라고 기재됐던 히라도는 막부의 쇄국정책에 따라 1641년 네덜란드 상관이 부숴지고 나가사키의 인공섬 데지마로 이전할 때까지 명실상부한 일본의 원조 국제 무역항이었다.

히라도 네덜란드 상관 창고를 복원한 현재의 건물.
히라도에는 또 히라도 출신 어머니와 해상 무역상이었던 중국인 아버지 정지룡 사이에서 태어나 중국 명청 교체기에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장악하고 네덜란드로부터 타이완을 수복한 정성공(鄭成攻)의 생가를 재현한 '정성공 기념관'이 있어 국제 해상교류의 역사를 실감케 한다.

구로다 나루히코 히라도 시장을 방문한 부산초량왜관연구회 강석환 회장은 "16~17세기에 활발한 대외교역을 벌인 히라도의 역사와 오늘날의 관광 현황을 둘러보기 위해 왔다"며 방문 목적을 밝혔다. 강 회장은 "16세기 히라도를 통한 서양 문물의 동아시아 전래와 이것이 조선과 일본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탐방의 의미를 강조했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끌려온 조선 도공 후예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사세보시 미카와치(三川內)는 순백색의 백자 생산지로 유명한 도예 마을로, 이곳에는 조선 도공의 후예가 신으로 모셔져 있는 '도조신사(陶祖神社)'와 '부산신사(釜山神社)'가 남아 있어 의미를 더한다. 인근 미카와치도자기미술관에는 미카와치도자기공업협동조합의 장인들이 생산하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초량왜관연구회 대외협력이사인 최복룡 세중여행 부산영업본부장은 "동아시아 국제교류와 조선 도공의 아픈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면서 한·일 양국의 미래를 준비해 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답사 코스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의 051-462-1911.

히라도·사세보(일본)

글·사진=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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