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동무도서관 '커다란 책 만들기'] 책 만들기부터 읽기까지… 도서관은 '커다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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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과정을 즐기면 책의 주체적인 독자가 될 수 있다. 맨발동무도서관에서 책 읽기에 집중하고 있는 어린이들. 윤민호 프리랜서 yunmino@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소통과 돌봄이 있는 공간. 이야기들이 사는 집. 맨발동무도서관은 그 자체로 '커다란 책'이다. 맨발동무는 마을이 도서관을 돌보고, 도서관을 통해 마을이 성장하길 꿈꾼다.

매주 같은 시간 모여 그림책 제작
지금까지 완성된 책만 30여 권
도서관 '책 읽어주는 시간'에 활용


도서관은 '커다란 기억은행'이기도 하다. 맨발동무도서관을 다녀간 수많은 이를 기억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도서관은 그 어려운 일도 해낸다. 대출 반납 데스크 '나눔자리'를 잘 활용하기 때문이다.

'나눔자리'는 컴퓨터 전산망에 기록된 이름, 연락처 같은 필수 정보 외에도 가족 관계, 이웃 관계, 독서 취향처럼 서로를 알아가는 정보도 사서와 활동가들의 기억 속에 차곡차곡 저장한다. 이렇게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도서관이 '커다란 책'이 되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도서관 동아리 중 가장 오래된 동아리 이름도 '커다란 책 만들기'.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에 모여 오후 3시까지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골라 '커다란 책'으로 만드는 커뮤니티다.

'커다란 책 만들기' 장수지 모임장은 "책을 선정하면 책 속 그림을 원래 책 크기의 4배 정도 크게 그린 커다란 책을 만들어 '책 읽어주는 시간'에 활용한다"고 말했다. 때론 큰 책으로, 때론 카드 형태로 제작되는 '커다란 책'은 오랫동안 꼼꼼히 그린 그림 덕분에 책 읽어주는 효과를 한층 높일 수 있다.

'커다란 책 만들기' 회원 8명이 요즘 작업 중인 '커다란 책'은 <작은 집 이야기>. 영원히 변치 않는 것들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과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사는 세상에 대한 소망이 담긴 그림책이다.

미국이 거대 자본주의로 빠르게 변화하던 시절, 폐가가 된 작은 집은 밤마다 예전에 살던 시골로 가는 간절한 꿈을 꾼다. 장 씨는 "도서관 인근 재개발 사업으로 정든 곳들이 헐리고 있는 마을 상황과도 맞닿아 있는 책인 듯해 '커다란 책'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작은 집 이야기>가 커다란 책으로 완성되는 기간은 6개월. 이제 절반 좀 넘게 작업했다. 회원들은 각자 맡은 분량의 그림을 그리면서 책 이야기를 나누고 시시콜콜한 일상도 나누며 수다를 꽃 피운다.

'커다란 책 만들기'가 이렇게 정성으로 그린 그림으로 완성한 커다란 책은 모두 30여 권. 오후 4시 도서관 이용자들을 위한 '책 읽어주는 시간'에 활용되거나 노인 시설 방문 행사 등 다양하게 쓰인다.

책과 사람 사이에 사연이 생기면 책은 더 애틋해지는 법이다. 김부련 맨발동무도서관 관장은 "책을 안 읽는 아이에게도 과정을 충분히 즐기게 하면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된다"고 말했다. 

맨발동무도서관은 학교 권장도서 목록을 바꾸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그냥 어디선가 툭 떨어진 권장도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정말 권하고 싶은 책이라 여겨지는 책을 학급 단위로 추천하도록 하는 형태.

도서관은 화명초등학교 3~6학년 각 반 어린이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반이 추천하는 책'을 선정하면 오는 13일 마을 축제 때 이 추천 책들을 전시할 계획이다. 김 관장은 "어린이들에게 주체적인 독자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도서관이 이용객들에게 책을 추천하기도 하지만, 이용자들이 자신이 읽고 감명 깊었던 책을 추천하기도 한다. 맨발동무도서관은 이용객들이 추천하는 책으로 매달 추천작 달력을 만들고 있다.

책 읽기 좋은 계절. 맨발동무도서관이 추천하는 책은 <라프카디오, 총을 거꾸로 쏜 사자>와 <모르는 척>. <라프카디오, 총을 거꾸로 쏜 사자>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그림책. <모르는 척>은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한 친구를 보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던 한 소년의 마음 변화를 그린 장편 그림책이다. 강승아 선임기자 se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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