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시간 속 '깡깡이 마을' 삶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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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 선생은 충청도 사투리를 문학적으로 잘 살렸고, 조정래 선생은 <태백산맥>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생동감 있게 형상화했죠. 부산의 생활상을 살려낸 박물지 같은 소설을 쓰는 것이 부산 작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한정기(사진) 작가가 최근 펴낸 두 번째 장편소설 <깡깡이>(특별한서재)는 부산을 무대로 한 부산 사람들의 얘기. 예전에 출간한 동화 <플루토 비밀결사대> <멧돼지를 잡아라>와 청소년소설 <나는 브라질로 간다>도 마찬가지였다.

한정기 장편소설 '깡깡이'
영도 대평동 일대 배경
70년대 엄마·맏딸 주인공
부산 생활상 담아낸 이야기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깡깡이 마을'이 있는 부산 영도구 대평동은 1970~80년대 원양어업의 전진기지이자 수리 조선업의 메카였다. 당시 대평동 일대는 작은 수리 조선소들이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깡깡이 아지매'들은 낡은 배를 수리하거나 새로 페인트칠을 할 때 끝이 납작한 끌처럼 생긴 망치로 배의 녹을 떨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쇠와 쇠가 부딪쳐 '깡깡' 소리가 밤낮 들려오는 바람에 '깡깡이 마을'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한 작가는 실제로 깡깡이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소설 속 주인공 정은이처럼 오남매 중 맏딸이었고 셋째, 넷째, 다섯째 동생을 키웠다고 한다. <깡깡이>에 나오는 에피소드 상당 부분은 자신의 경험과 친구들 이야기 등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국민학교' 졸업을 앞둔 맏딸 정은이. 정은이 엄마는 집을 나간 아버지 대신에 다섯 남매를 키우기 위해 깡깡이 일을 하며 집안을 책임진다. 정은이는 동생 넷을 돌보기 위해 중학교 진학도 1년 미루면서 엄마 대신 살림을 맡았다.

"소설은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가장의 역할을 대신해 가족을 먹여 살렸던 엄마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아래 희생을 강요당하며 살았던 맏딸 등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50대 이상 여성들이 이 소설에 공감을 많이 하는 이유입니다."

한 작가는 <깡깡이>를 '흘러간 시간 속 사람들과 잊혀가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명명했다. 이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그는 2016년 봄, 무려 40여 년만에 다시 깡깡이 마을을 찾았다. "현장답사를 여러 차례 했어요. 살았던 골목은 사라졌고 조미오징어 공장과 수산실험장이 있었던 곳에는 각각 아파트와 선용품센터가 들어섰어요. 용신당과 양다방은 그대로 있어 당시 풍경을 떠올리게 했어요."

한 작가는 199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작은 불꽃'으로 등단하며 동화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2013년 추리동화 시리즈 <플루토 비밀결사대> 5권을 완간했다. 이 작품은 2014년 EBS에서 16부작 어린이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영됐다. 하지만 그는 <플루토 비밀결사대> 완간 뒤 작가로서 한계를 느꼈고 이야기 소재가 고갈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깡깡이>를 쓰면서 다시 이야기의 샘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깡깡이>는 20여 년 작가 생활의 새로운 서막을 여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작가로서 한 단계 올라왔구나 하는 안도감을 주네요."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사진=이재찬 기자 c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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