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신춘문예-희곡] 도착/김옥미
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인물
손 명준
아부지
어무이
누나야
나이롱
공간
재활 병원.
무대 중앙에는 침상이 하나 놓여 있다.
침상을 중심으로 커튼이 둘러 쳐지고,
커튼 양쪽 끝에 출입문과 벤치가 있다.
무대의 테두리를 따라서
재활 운동을 위한 긴 트랙이 그려져 있다.
커튼으로 입원실 안팎이 구분 된다.
1장
명준, 두유 박스 손에 들고 등장.
[손명준] 어디 간 거야?
침상 둘러본다. 뻥튀기와 두유가 쌓여있다. 침상 위의 수첩 펼쳐 본다.
[손명준] 이번 달 목표, 숫자 1000까지 세기. 비슷한 말 헷갈리지 않기? 눈은 어떻게 내릴까요, 선택하세요. 펑펑. 퐁당퐁당. 주룩주룩? 무슨 숙제가 이렇게 우중충해.
침상 뒤 파티션 너머를 흘깃 보려는데, 나이롱 등장. 커튼을 친다.
[나이롱] 왔나.
명준, 다시 커튼을 걷는다.
[손명준] 환기 좀 시켜요. 괜히 답답하기만 하고.
[나이롱] 너희 어무이 볼까봐 그라는 기지. 꼬우면 1인실로 옮기라.
[손명준] 다들 어디 갔어요?
[나이롱] 내가 아나.
[손명준] 아버진…… 좀 괜찮아요?
[나이롱] 어제도 물어봤다 아이가. 똑같지 뭘.
[손명준] 누나 말로는 이제 발음도 좋아지고,
[나이롱] 그래봐야, 원래대로는 못 돌아온다.
[손명준] 병원에서 계속 재활해야죠.
[나이롱] 하이고. 너희 식구들 깝깝해가 죽을라한다 마.
[손명준] 이제는 뭐 혼자서도 걷는다던데?
[나이롱] 참내. 직접 봐라. 달라진 것도 없더만은.
손명준, 걸어 본다. 등을 펴고, 천천히, 꺾이는 관절을 느끼며 발을 내딛는다.
[손명준] 아버지가 원래, 어떻게 걸었더라.
[나이롱] 원래가 어데 있노. 내도 원래는 병원에 오도 안했다.
[손명준] 아저씨는 나이롱이잖아요.
[나이롱] 내도 니처럼 젊은 때가 있었다는 기지.
나이롱, 팔뚝 내 보인다. 힘있게 앉았다 일어나본다.
[손명준] 우리 아부지는, 작년까지만 해도 현장에 나갔어요. 어릴 때부터 집에 역기가 있었다니까요. 맨날 아부지가 역기를 한 손으로 번쩍. 이렇게. 훅. 훅! 고압 만지는 분이에요. 그 높은 전봇대 올라가는데, 이 다리 밀어내는 힘이, 장딴지가, 얼마나 힘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렇게. 그래서 아부지가 벌써 걸을 수 있는 거에요. 원래 하던 게 있으니까! 그러니까 좀만 더 재활하면,
[나이롱] 니 눈으로 봤나? 그래 힘있게 걸을라모 당당 멀었다이.
[손명준] 누나랑 어무이 있으니까 됐어요. 저는…… 못 보겠어요.
명준, 다리에 힘이 풀린다. 손을 잡았다 펴본다.
[나이롱] 비키바라. 짐 좀 싸구로.
[손명준] 어디 가요?
[나이롱] 퇴원할 끼다.
[손명준] 보험 때문에 계속 있을 거라면서요?
[나이롱] 치사하고 더러버서.
[손명준] 무슨 일 있었어요?
[나이롱] 고마 됐다. 비키라 좀.
명준, 뻥튀기 집어다 나이롱에게 몽땅 건네준다.
[손명준] 아저씨 다 가져가요 그럼.
[나이롱] 뻥튀기 니나 다 무라.
[손명준] 다 어디 갔는지 몰라요?
[나이롱] 오늘 아침에 한 판 했다 아이가.
[손명준] 누가요?
[나이롱] 얼매나 사납게 덤벼드는지 할 말이 없게 만들어 뿌드라니까.
[손명준] 병원에서 그렇게 사납게 덤빌 일이 뭐가 있어.
[나이롱] 너희 아부지도 쪽팔리가 입 다물고 있드라이까.
[손명준] 엄마가 대판 했다는 거에요 지금?
[나이롱] 너희 엄마 성질이 보통 성질이가.
[손명준] 뭐한다고 싸워. 똥 무서워서 피해?
[나이롱] 똥?
[손명준] 누군데요? 가서 내가 한 바탕 할까보다.
[나이롱] 가, 가서…… 너희 아부지나 찾아 봐라.
[손명준] 됐어요. 그만 갈래요. 저 왔다 갔다고 해 주세요.
[나이롱] 내가??
[손명준] 얼굴 봐서 뭐하겠어요?
[나이롱] 걸거치네 자슥 진짜.
어무이, 오줌통 들고 등장. 나이롱, 안고 있던 뻥튀기 바닥에 던진다.
[나이롱] 똥은 내가 피해 드리야지. 퉤!
나이롱, 서둘러 퇴장. 어무이, 나이롱 노려본다.
[어무이] 염병을 하네. 어휴.
[손명준] 어디 갔다가 이제 와?
[어무이] 너희 아부지 인자 소변줄 떼부렀다.
어무이, 소변줄과 오줌통 분리한다. 명준, 오줌통 보지도 못하고 고개 휙 돌린다. 코 막는다. 어무이, 그 모습 보고는 한숨 쉰다.
[어무이] 인자 안녕인게.
[손명준] 그럼, 대소변 가리는 게 어디야. 은총이지. 은총.
어무이, 침상의 이불 바르게 편다. 베게 제자리에 놓는다. 그리고는 옷가지들 짐 가방에 주워 담기 시작한다.
[손명준] 또 빨래 해오라고?
[어무이] (물건들 담는다)
[손명준] 집에 갖다 놓으라고?
명준, 번뜩, 심상찮아 어무이의 짐 가방 부여잡는다.
[손명준] 왜 대답이 없어?
[어무이] 인자 그만 너희 아부지랑! 안녕이란게!
누나, 빈 휠체어 밀면서 등장. 어무이, 빈 휠체어 잡아끌어다 짐 가방 옮겨 담는다. 누나, 휠체어 째로 침대에다 짐 쏟아낸다.
[누나야] 고만해! 아빠 언어 재활 내가 잘 데려다 줬잖어.
[어무이] 나가 동네북이여?
[손명준] 왜이래?
[누나야] 왜 이러긴. 니가 하루 종일 병원에서 뒤치닥꺼리 해 봐.
[손명준] 누나. 나는 뭐 놀아? 아침부터 서류 뗀다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어무이] 너희 아부지 어떻게 되든가 말든가, 니들 알아서 해.
[누나야] 나이롱 그 아저씨 내가 족칠게. 응?
[손명준] 아재가 엄마 건드렸어??
[어무이] 환자보고 자꾸 담배 한 대 필라요 물어봐 싸니께 나가 다 엎어 부렀제. 염병, 죽다 살아난 사람한테 뭐땀시 담배담배 노래를 불러싼대!
[누나야] 그렇게 아빠 위한다는 사람이 지금 짐 싸들고 나가?
[어무이] 다 필요 없당게! 너희 할머니 땀시 송신 나 죽겄다잉,
[누나야] 레퍼토리 시작이네.
[손명준] 내가 다시 전화 드렸어. 몇 달 뒤엔 퇴원할 테니까, 걱정 말라고.
[어무이] 그 놈의 장남! 큰 며느리! 집구석 엉망인디 제사는 뭔 놈의 제사여?
[누나야] 니가 할머니한테 얘길 좀 해봐. 병실에서 제사 지내란 소리야?
[손명준] 할 말 다 하면서 어떻게 살아. 엄마도, 그냥 좋게 좋게…
[어무이] 다른 데 시집가란 소리냐고, 나가 그 소리까지 해부렀다.
[누나야] (어무이 짐 가방 얼른 뺏어 품에 안는다)
[어무이] 머리 복잡해 죽겄는디 너희 아부지는 언어 재활 안 간다고 뻗대고 안 있냐, 집에 가자고 가자고 난리를 피운디 나이롱 환자 그 놈은 내가 우스워 보이는가 자꾸 시비조란게. 명준이 니 놈은 맨날 아부지 얼굴도 안 보고 휙 가버리고 말이여. 집구석 무슨 일 있든지 말든지, 바깥으로만 나 댕기는 거는 천상 지 아부지 탁했당게!
[누나야] 머리 복잡할 거 뭐 있어? 아부지 그렇게 집에 가고 싶어 하면, 그냥 퇴원하자니까.
[손명준] 퇴원하면 뭐가 달라져? 얼굴 본다고 뭐 달라지냐고.
[누나야] 아빠, 너만 기다리셔. 들렸다가 그냥 갈 거면 뭐 하러 와?
[손명준] 내가 여기 있고 싶겠어?
[누나야] 얘도 레퍼토리 시작이네.
[손명준] 다들 좀 냉정하게 생각해. 현실을 보라구! 병원비 누가 감당하는데? 집도 못 팔아, 차도 안 팔려, 엄마는 일도 안 구해. 나중에 비빌 데는 할머니밖에 없어. 거길 왜 건드려?
[어무이] 뭐? 비빌 데?
어무이, 뒷목 잡고 쓰러진다.
2장
커튼 친 상태로, 커튼의 바깥 테두리에 긴 트랙만이 보인다. 아부지, 뻥튀기 봉지 한 손에 들고서 힘겹게 한 걸음 한걸음 걸어간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지만 열심히 걷는다. 손이 저리는 듯 폈다가 접었다가 한다. 뻥튀기 봉지 뜯어서 하나만 먹어 볼까, 싶다가도 다시 트랙 끝 출입구 쪽을 향해 걷는다. 한참 걸어서, 트랙 끝 원무과 콘솔에 도착한다. 아부지, 혀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말이 더듬더듬 느리지만 또렷하게 발음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부지] 퇴워, 퇴워 할라카느데,
띵동. 하는 소리. 나이롱, 등장. 멀리서 아부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다.
[나이롱] 내 차롑니더. 저기 번호표 뽑아 오이소.
아부지 둘러본다. 반대편 트랙 끝, 번호표 뽑는 기계 보인다.
[아부지] 퇴워만, 하자, 퇴워.
[나이롱] 혼자서 무슨 퇴원을 한다 그랍니까? 혼자 몬 합니다. 보호자 데리고 오이소.
[아부지] 아이. 아이다. 내 가다 오께. 알았다.
아부지, 트랙 보면서 쉼 호흡 해 본다. 힘겹게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떼면서 번호표 기계로 향한다.
3장
어무이, 침상에 누워 있다. 명준, 누나, 어무이를 골똘히 쳐다본다.
[누나야] 퇴원하자.
[손명준] 그럼 병원비는?
[누나야] 나중에 퇴원한다고 병원비가 어디서 생겨?
[손명준] 애매하게 퇴원했다가, 어중간하게 걷고 어중간하게 말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정상적으로 말하고 걸을 때까지,
[누나야] 아빠 정상이야. 지금도 충분히!
[손명준] 아부지 하나 때문에 지금 줄줄이 도미노야. 돈 들어갈 데가 한 두 군데인 줄 알아? 정상이라는 말이 나오냐구.
[누나야] 퇴원해야, 엄마가 일이라도 구하지.
[손명준] 엄마 일 안 해. 평생 사회생활 한 번 안 해봤잖아. 엄마가 왜 지긋지긋해하면서 퇴원 안 하는 줄 알어? 돈 벌기 겁나고, 가장 되기 겁나고, 앞으로 일 짐작도 안 되니까, 그래서 그냥 여기 계속 있고 싶은 거라구.
[누나야] 그거…… 니 얘기 아니구?
사이.
[손명준] 많이는 못 벌어도, 아부지 좀 더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뒷바라지 할 수 있어. 내가 어떻게든 아부지 차도 팔고,
[누나야] 그 차, 아부지 차 말인데, 아무래도,
어무이, 일어나지도 못하고, 얼굴을 감싸 쥔다.
[어무이] 그라제. 돈 벌기 겁나고, 가장되기 겁나고, 앞으로 일 짐작도 안 된다잉.
[누나야] 엄마.
[어무이] 사는 거이 참말로 징하다잉. 그래도 너희 아부지 좀 보란게. 하루 하루 달라지는 거이 보여. 눈빛이 달라진당게. 그 좋아하는 드라마, 너희 아부지 보지도 못했어. 말하는 거 따라가질 못해가지고. 시상에 인자는 드라마 본당게? 다 챙겨서 봐야. 오늘은 뭔 드라마 하는 요일인지 맨날 물어 본단 말이여.
[손명준] 거 봐. 조금 더 기다리면,
[누나야] 아부지 많이 좋아졌어. 드라마가 뭐 병원에서만 해? 집에서 티비 보면 되잖아. 내가 맨날 왔다 갔다 하면서 말 걸어드리고,
[손명준] 누나랑 전문가랑 같아?
[누나야] 별거 없던데 뭘.
[손명준] 숙제 보니까 전문성이 있더만. 눈은 어떻게 내릴까요?
[누나야] 그거 다 내가 푼 거야.
[손명준] 그걸 누나가 왜 풀어?
[어무이] 아따, 고만 좀 싸워라잉. 머리 울린게.
[누나야] 다 너같이 사는 줄 알아? 사람이 어떻게 정답만 찾고 앉아 있어. 아빠 웃겨. 처음에만 골똘히 풀다가, 나중에는 그냥 아무데나 체크 한다니까. 그래서 내가 대신 풀어준다. 왜!
[손명준] 다들 정신 차려! 뻥튀기도 내가 다 갖다버리라 그랬지. 아부지 과자 드시면 안 된다니까. 아부지 환자야. 독하게 마음먹어야지.
[누나야] 뻥튀기도 못 먹으면 그게 사람이냐?
[손명준] 그럼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면 그게 사람이야?
[누나야] 과자니 음료수니 입도 안 대시던 양반이,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어?
[어무이] 또 매점 간 거여?
[누나야] 엄마 병실에서 나가자마자, 나 붙잡고,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말하는 거야.
[어무이] 뭐라고 한디.
[누나야] ……니, 내,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주면 안 되나.
사이.
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손명준] 그 좋아하는 소주도 못 드셔서 어떻게 하나.
[어무이] 병원에 일찍 갔어야 하는 건데.
[누나야] 119에 신고 빨리 했어야 했는데.
[손명준] 얼른 차타고 모시러 갔어야 했는데.
[어무이] 원래 당뇨니까, 또 다리가 저린가보다,
[누나야] 그 우직한 사람이, 왜 이렇게 멍청한 눈으로 있나, 눈물이 막 쏟아지는데,
[손명준] 대답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구.
[누나야] 입을, 못 떼던 걸.
[손명준] 아니, 나 말야.
[누나야] 너?
[손명준] 구급차 타고 가면서도, 구급대원이 뭐라 물어보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더라구. 그 정신에도, 아부지가, 다 대답했어. 담배는 하루에 두 갑 피운다고, 이렇게, 손가락 두 개. 혈압약 먹냐고 하니까, 고개 끄덕. 어제 술 자셨냐 하니까 절레 절레.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 담배는 하루에 얼마나 태우시나. 술은 어제 자셨나, 간밤에 꿈은 꾸셨나……
[어무이] 인자 다 지난 일이여… 뇌졸중인디 살아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아니냐. 네 탓도 내 탓도 아니랑게.
[손명준] 아부진 왜 안와? 나 왔다갔다고 해.
[어무이] 쪼깐 있어봐야. 지끔 시간이 몇 시나 되었다냐?
[누나야] 언어 재활 끝날 때 벌써 넘었는데?
[어무이] 이 시간까지 안 오고 어디서 뭐한대.
어무이, 침상에서 내려온다. 부축하는 명준과 누나.
4장
아부지, 원무과 콘솔에 번호표 내민다. 나이롱, 그 모습 구경하듯 바라본다.
[아부지] 퇴워, 퇴워 할라카느데,
올려다본다.
[아부지] 버언호 416버 맞다 아이가? 퇴워! 퇴워 해도!
나이롱, 아부지에게 다가간다.
[나이롱] 퇴원할라모 저리로 가셔야지예. 창구가 틀리다 아입니까. 있어보이소.
나이롱, 번호표 뽑아다가 아부지에게 준다.
[나이롱] 담배 한 대 피실 랍니까?
아부지, 나이롱의 얼굴을 물끄러미 본다.
[아부지] 아이다. 필요 엄따!
[나이롱] 아까는 죄송했심니더. 그마이 드센 마누라랑 살라면은 힘들지예? 농담 좀 한 거 가지고 그 여편네 와 그랍니까? 좋게 좋게 좀 하면 될긴데. 좋은 게 좋은 기다 아입니까! 내는 갑니다. 몸조리 잘 하이소.
아부지, 번호표 들고서 손을 바들바들 떤다. 나이롱을 따라 간다. 턱없이 느리다.
[아부지] 야! 이, 야! 야 이 개새, 야 이 새기야!
나이롱 돌아본다.
[나이롱] 뭐라꼬예?? 내 불렀습니까?
[아부지] 니, 니니니니, 니, 딱 있어 봐라이,
[나이롱] 아들내미도 왔드만. 혼자 그라고 있지 말고, 아들 불러가 시키이소. 그 몸으로 뭐를 할끼라고……
나이롱, 뒤돌아 갈 길 간다. 퇴장. 아부지는 나이롱을 쫓아, 힘들게 힘들게, 쫓아간다. 번호표 내던진다.
[아부지] 개새끼, 개 호로, 개 호로. 잡새끼……
아부지, 원무과 돌아본다. 내던진 번호표 주우러 간다. 번호표 줍고는 고개 숙인다. 다시 원무과로 향한다. 나름 속도가 빨라졌다. 원무과 콘솔에 도착해서 번호표 탁 내려놓는다. 숨이 가쁘다.
[아부지] 퇴원할 거라 캐도, 퇴워. 내 호온자 해도 된다. 퇴원 되는 기 마앚제?
아부지, 돌아 선다. 트랙 반대편 끝으로 향하며, 계속해서 읊조린다.
[아부지] 지에, 가끼다. 집에 가야 된다. 그게 맞다, 집에 가야 된다. 그래야 된다.
숨 몰아쉬며 벤치에 천천히 앉는다. 뻥튀기 뜯으려다 만다.
[아부지] 우리 딸이 사주운 긴데, 아껴 무욱어야지. 우리 아들 왔나. 이 노무 손, 트을림업시, 바로 갔을 기다. 내 어구도 안 보고. 내가 얼른 가삐야 된다. 집으로.
주머니에서 열쇠 꺼낸다. 열쇠 여러 개 중에 하나 집는다.
[아부지] 내 차. 그 차가 어떤 차인데.
앉아서 엑셀 밟는 시늉.
[아부지] 에세. 브레이크. 에세. 브레이크. 좌 까빡. 우 까빡.
핸들 잡는 시늉 하려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끙차. 앞으로 힘들게 걸어 나간다. 엘리베이터 띵 하는 소리. 한 걸음 내딛는다.
5장
명준, 누나, 어무이가 출입구 문을 열고 트랙 끝으로 달려간다. 명준, 둘러보다 번호표 뽑으러 간다. 쪼르르 누나와 어무이 따라 붙는다.
[손명준] 뭘 눌러야 해. 증명이야 수속이야, 접수야?
[누나야] 증명 아냐?
[손명준] 증명?
[누나야] 퇴원 수속 증명!
[손명준] 그 증명이 아닐 텐데. 보험사 서류 떼는 거 아냐?
[어무이] 그랑게 접수부터 해야제. 민원 접수.
[손명준] 우리가 새로 지금 뭘 접수할 게 아닌데요?
[어무이] 뭐든지 접수부터 시작이랑게? 접수부터 혀.
[누나야] 야! 그냥 다 뽑아! 세 명 나눠서 기다리게.
[어무이] 나이롱이 거짓말 한 게 틀림없당게? 이라고 복잡한 거를 너희 아부지가 그 몸으로 어떻게 한 대!
[손명준] 진짜로 퇴원이라도 했으면 큰일이잖아. 확인부터 해.
[어무이] 정산도 안했는디 그라고 쉽게 퇴원 시켜준대.
[누나야] 일단 아부지 찾는 게 먼저인 거 아냐?
[손명준] 여기 다시 입원하려면 대기자가 몇 명인 줄이나 알어?
[누나야] 지금 여기 원무과 대기줄이 몇 명인 줄은 알어?
[어무이] 하이고. 일단 뽑아라잉. 기다리다 날 새겠은게.
어무이, 누나 벤치에 앉는다. 명준, 번호표 들고 서성인다.
[누나야] 이왕 이렇게 된 거, 퇴원 해.
[어무이] 하루하루 달라진 게 눈으로 보인다니까!
[누나야] 집에 가 봐. 기억할 거 천지여서, 상태가 더 좋아질 걸?
[어무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믄 쓰겄냐! 생소한 거를 많이 봐야써. 붕대. 천장. 링거! 그런 걸로다가.
[누나야] 참으로 유익하네. 아부지 얼마나 답답하겠어! 오죽하면 당신이 직접 퇴원 수속 밟을까.
[어무이] 암만 생각해도 이거는 말이 안된당게. 접수 증명 수속을 너희 아부지가 다 한 칼에 해결해 부렀다고? 미션이 한 두 개가 아닌디?
[누나야] 그러니까, 오죽하면,
[손명준] 여긴 내가 있을 테니까, 아부지 좀 찾아봐. 어딜 갔는지!
[어무이] 옴마. 너희 아부지를 지금 어서 찾는대?
[손명준] 아부지 어디 갈 데 없어?
[누나야] 매점?
[어무이] 겨우 매점이나 갈라고 퇴원 해부렀다고야.
[누나야] 어딜 간 거야. 이 코딱지만 한 병원에서.
[손명준] 여기 부산에서 제일 큰 재활 병원이야. 신축이고!
[누나야] 어휴.
[어무이] 틀림없이 밖으로 나갔당게. 맨날 차타고 여기저기 바깥으로다 나다니던 양반 아니냐.
[손명준] 그러니까 좀 찾아봐! 멀리는 못 가셨을 테니까!
[어무이] 그러다가, 전부 엇갈리면 어쩔라고 그란대. 하나는 병원에 있어야제! 나가 병원에 있을텐게. 너희 누나랑 댕겨와. 나는 여기 길도 모른게.
[누나야] 횡단보도라도 건너시다가, 쓰러진 건 아니겠지?
[어무이] 그라믄 연락이 왔겄지. 팔찌 차고 있잖여.
[누나야] 점심도 못 드셨는데. 저혈당 오는 거 아니야?
[어무이] 워메워메. 이라고 심장 떨린디 어디 가서 찾아온대. 나는 못해.
방송 소리 들려온다.
[방송] 개나타, 개나타 가600820, 차주 분 차 빼세요. 아아.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장애인 주차 자리에, 개나타 가600820 차주 분 차 빼세요.
[누나야] 니 차 아냐? 아부지 차타고 다니잖어.
[손명준] 아냐.
[누나야] 개나타 맞는데?
[손명준] 번호가 달라.
어무이, 번뜩 주머니 뒤진다.
[어무이] 옴마. 열쇠가 없다잉. 시상에. 열쇠가……
[손명준] 집 열쇠?
[어무이] 차키! 너희 아부지, 차키……
사이.
[누나야] 에이, 설마, 설마 운전 하시려고…… 설마,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는 분이……
[손명준] 아부지 제발! 그냥 가만히 좀!!
명준, 번호표 던진다. 주저앉는다. 어무이, 명준을 일으켜 세운다.
[어무이] 아직 안 늦었어야. 차 어따가 댔는지 알제? 요 얼굴. 얼굴 딱 보고 얘기해야 써! 도망갈 생각부터 하지 말고, 똑바로 마주 보는 거여. 아부지, 그거면 충분혀. 뭐단다고 이라고 섰냐. 얼른 가야!
명준, 트랙 끝으로 향한다.
6장
아부지, 뻥튀기 품에 안고 서 있다. 차키 버튼 누른다. 멀리, 뿅뿅 하는 소리. 소리가 날 때마다 커튼 뒤로 자동차 전조등처럼 불빛이 번쩍인다. 아부지는 소리 난 지점까지 힘들게 걸어간다. 바닥에 털썩 앉기도 한다. 기다린 듯 차 경적 소리 울린다.
[아부지] 죄소함니다. 죄소함니다.
아부지, 힘들게 일어난다. 다시 일어나 버튼 누르고, 소리 난 지점까지 걸어간다. 도착해서 다시 버튼 누르면, 또 다른 곳에서 소리가 난다.
[아부지] 부며히, 여기 소리가 나는데……
둘러보다가, 다시 소리 나는 지점까지 걸어간다. 차가 쌩 지나가는 소리. 덜컥 아부지 자리에서 멈춘다. 가쁜 숨 몰아쉬다 다시 버튼 누른다. 뿅뿅 소리. 점점 소리가 커져 갈 때쯤, 명준 등장. 아부지 앞에 선다. 아부지, 명준 올려다본다. 다시 고개 숙인다. 지나쳐 걸어간다. 다리를 거의 절다시피 한다.
[손명준] 어디 가시는데요!
[아부지] 비키라.
[손명준] 어딜 가시는데요. 예? 환자가 병원에 있어야지 어디를 자꾸,
[아부지] 비비비비, 비, 비키라.
[손명준] 차는 뭐 할라고요.
[아부지] (차키 버튼만 누른다)
[손명준] 아부지 운전 하실려고요?
[아부지] (고개를 숙인다)
[손명준] 아부지 환자에요. 환자!
[아부지] ……내, 내 환자 아이다. 내…… 내, 내내내! 내 빙시 아이다!!
[손명준] 누가 아부지 빙시라 했어요! 차도 팔 거에요. 할부금 못 갚는다구요!
[아부지] 무신…… 무 무무, 무신…… 두 달, 두 달만 갚으모, 되다, 저 차가, 어떤 찬데, 파라? 저 차가 어떤 찬데…
[손명준] 저는 감당 못해요. 지금 있는 똥차도 버겁구요. 두 달도 아니고, 2년 남았어요. 2년. 아시겠어요?
[아부지] 니 물려주울라 캐다. 니 장가가 때, 트럭 모고 가는 기 쪽팔 리가, 그래서 내, 이 나이에, 전보옷대, 전보옷대 올라가가, 까치집도 털고, 내가, 내가……돼따. ……차 키 도라.
[손명준] 아부지…… 운전, 이제 못 해요. 핸들 못 잡는다구요!
[아부지] 내가, 내가 니 운저 가르쳐줘는데, 어데 니가, 아부지한테, 어데서 니가, 대대대, 대들고,
[손명준] 아부지만 다쳐요? 괜히 엄한 사람까지 다쳐요. 차 못 몰아요! 절대!
아부지, 잘 움직이지도 않는 손발로, 핸들 잡는 시늉을 해가며, 눈을 반짝인다. 명준, 그 모습 쳐다보지도 못하고, 바로 고개 숙인다.
[아부지] 봐라. 자 아부지 함 봐라. 에세! 에, 에세. 브레이크. 좌 까빡. 우 까빡. 아부지, 하 수 있다. 아부지 비비비, 빙시 아이다. 내, 내 지끔도, 다, 하알 수 이따. 정상이다.
[손명준] 누가, 누가…… 아부지더러…… 아부지…… 이제는, 같이 해야 되요. 혼자서는 안 돼요. 밭에도 홀랑 혼자 갔다 오지 말고, 산책도, 어무이랑 같이 다녀야 되고, 이제는, 같이 살아야 된다구요. 고기도, 아부지만 굽지 말고, 제가, 제가 구워서, 쌈 싸드릴 테니까, 일도 그만하실 때 됐고, 아부지 어디 가고 싶으면, 제가, 제가 모셔다 드릴 테니까, 맨날은 안 되고, 시간 날 때, 좀 지나서, 여유가 좀 생기면, 아니, 꼭 그렇지 않아도, 그게, 그러니까,
명준, 얼굴을 가린다. 아부지, 명준 얼굴 어루만지려다, 손을 거둔다. 명준 지나쳐서 걸어간다.
[아부지] 따…… 따, 따 라 오 지 마 라!
[손명준] 어디 가실 건데요. 어디 가시냐구요! 그것만 말씀 좀 해보세요! 어딜 그렇게 가시려고!!!
[아부지] 우리, 우리 아드, 아드 보러.
[손명준] ……저요?
[아부지] 이 노무 손, 우리 깐도리, 깐돌이, 보러.
[손명준] 저 여기 있잖아요. 여기!
[아부지] 니느, 니니니니 니느…… 내가 병원에 있으모, 내 어굴도 안 보고, 가삔다.
[손명준] 맨날 오잖아요. 맨날! 두유 한 박스 들고 맨날!
[아부지] 병워에 있으모, 우리 아드 얼굴 못 본다.
[손명준] 아부지!
[아부지] 집에, 집에 가야 되다. 가느 게 맞다. 그게 맞다.
[손명준] 병원에 계셔야 한다구요. 환자라구요!
[아부지] 내!!!!!!!!!! 환자 아이다. 비비비 빙시 아이다. 내는…… 니 아부지다. 아부지.
아부지, 휙 뒤 돌아 선다. 차키 버튼 누른다. 버튼 세게 누르다 못해 차키 떨어진다. 주우려는데, 몸이 마음대로 듣질 않는다. 손에 쥐었다가도, 자꾸만 차키 바닥에 떨어진다. 명준, 다가가 뺏듯이 차키 줍는다. 아부지 일으켜 세운다. 아부지, 있는 힘을 다해 명준 뿌리친다.
[아부지] 놔라. 내 하알 수 있다.
아부지, 겨우 일어선다. 명준, 차키 눌러본다. 아부지, 차키 받을 생각도 않고 소리 나는 곳으로 향한다. 명준, 달려가 아부지의 손에 차키 쥐어준다.
[손명준] 아부지 맘대로 하세요. 평생을 아부지 맘대로 하고 사셨잖아요!! 언제부터 그렇게 저 보고 싶어 했다고 그러세요?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인데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면서…… 이제 와서, 얼굴 마주 보고, 도대체 무슨 말을……
명준, 눈물이 쏟아지자 휙 돌아선다. 천천히, 아부지와 멀어진다. 아부지, 명준의 뒷모습 바라본다. 목이 멘 채로 목소리 터져 나온다.
[아부지] 며, 며엉, 명준아. ……손,명.준이!!!!!!!!
명준, 아부지와 마주 보고 선다.
[아부지] 가지마라. 아부지 놔두고 가지마라. 니 매앤날. 아부지 얼굴도 안 보고…… 가지마라.
아부지, 다리에 힘이 풀린다.
[아부지] 내, 내 혼자서, 형제드을 어버 키우고, 아무도 안 갈차 주느데, 기술 배아가, 니 제대로, 어얼굴도 몬 보고, 먹고 산다고, 바빠아가, 핸들도 넘하안테 안 맡기고, 내가, 내가 고기 굽는 것도 그래, 안 맡기 봤는데, 니 아부지가 이래가 되나. 으이. 인자, 인자 이 손으로 우예 사노.
[손명준] 여기 있네…… 이 노무 손. 잡아요, 아부지. 우리 없으면 없는 대로, 다시 시작해요. 지금도, 아부지…… 충분히, 아부지 같다니까. 같이 가면 되지… 서로 의지하면서… 이래 얼굴 보고…… 더듬더듬, 말도 하나도 안 통할 것 같아도, 뭔 말인지 다 아는데. 그러면 됐지. 진작에. 진작에…… 얼굴 보고… 얘기할 거를.
명준, 아이 달래듯 아부지의 눈물을 닦아준다. 아부지에게 등을 내민다.
[손명준] 가요. 아부지.
아부지, 머뭇거리다, 명준의 등에 업힌다. 명준, 슬쩍 아버지 얼굴 본다.
[손명준] 오늘 아부지 얼굴 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부지] 너희 엄마는…… 괘안나.
[손명준] 네.
[아부지] 그라고…… 내… 지짜로 퇴워하는 거는 안 되나?
[손명준] 네.
[아부지] …맞나.
[손명준] 흐흐. 가서 다 같이 한 번 얘기해 봐요.
[아부지] 명주운아.
[손명준] 왜요?
[아부지] 저어기…… 뻐엉튀기 흘린 거, 주워가꼬 가자.
명준, 잠깐 휘청 인다. 다시 자세 고쳐 잡고, 뻥튀기 향해 아부지를 업은 채 힘들게 한 걸음 한걸음, 걸어간다.
7장
명준, 커튼 열어젖힌다. 누나와 어무이, 침상을 중심으로 앉아 있다.
[손명준] 저 왔어요!
들고 있던 뻥튀기 침상에 놓는다.
[어무이] 왔어?
[누나야] 뻥튀기는 내 건데. 두유 사 와야지!
[손명준] 나도 아부지 뻥튀기 사 줄 거야. 왜!
[누나야] 차키 위조 하고 있다야.
[어무이] 이건 그대로 두고, 열쇠만 바꿔야지. 못 알아채게.
[누나야] 손톱이 없어서, 힘들어.
[어무이] 줘 봐.
[누나야] 이랬는데 아부지 진짜 차키 꼽아보면 어떡하지?
누나, 열쇠 꾸러미 흔들어 보인다. 반짝인다.
[누나야] 아부지 모르시겠지?
[손명준] 아부지가 어떤 사람인데. 바로 아실 걸.
[어무이] 엑! 힘들게 바꿔놨더니.
[손명준] 알고도 모른 척 하실 걸, 아버진.
[누나야] 엥?
[손명준] 다 들켰잖아. 한 번도 얼굴 마주한 적 없는 거.
침상 지그시 본다. 침상 위, 크게 붙어있는 달력 보인다. 달력 찢는다.
[누나야] 아직 하루 남았잖어!
[손명준] 내일이면 새해인데 뭘. 아부지는 어디 갔어?
[어무이] 보고 가게?
[손명준] 얼굴 뵙고 갈래.
[어무이] 인자 올 때 다 되얏는디. 하루 종일 걷는당게. 새해 목표가 뛰는 거거든. 달려보는 거.
아부지, 허리를 곧게 펴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다. 가뿐하다.
[손명준] 아부지! 저 왔어요!
[아부지] 차 막힌다. 얼른 드으르가라.
[손명준] 뭘 오자마자 가라 그래요?
[아부지] 밖에, 누운 온다.
[누나야] 눈???
누나, 달려 나온다.
[누나야] 영 춥더만. 부산에도 눈이 오네.
[어무이] 눈이 온 게 그른가. 내 춥드만은 오늘은 날이 좀 따숩다잉.
[아부지] 차 마힌다니께네. 어얼르은, 드가라.
[손명준] 우리, 가출 말고 외출이나 할까?
[누나야] 눈싸움이나 해야지.
[어무이] 나는 가출 할랑게. 인자 그만 안녕이여.
[손명준] 엄마!
아부지, 피식 웃는다.
[손명준] 나가서 국밥이나 한 그릇 먹자.
[누나야] 눈 오는 날에는 재첩국이지.
[어무이] 감자탕.
[아부지] ……시래기국.
[손명준] 일단, 다 같이 가자! 누나는 짐 챙기고, 아부지는 잠바 걸치고, 어무이는 지갑 챙기시고? 살살 가 보입시다! 눈이 어떻게 내리나 보자.
모두 함께 서로를 얼싸 안고 부축 하며, 눈 내리는 광경을 보듯 환한 표정으로-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