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적산가옥
‘적산(敵産)’이란 글자 그대로 ‘적(敵)의 재산’이다. 자기 나라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敵國)의 재산을 가리킨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우리나라에서 ‘적산’은 좀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1945년 8·15 이후 일본이 패망해 철수하면서 한국 내에 남기고 간 일본 국가나 일본인 소유의 재산을 광복 후에 적산, 혹은 ‘귀속재산’이라 칭했다. 적산가옥이란 바로 광복 전 일본인 소유였던 집이다.
광복과 함께 38선 이남에서 적산은 모두 미 군정청에 귀속됐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국유재산이 됐다. 광복 이후 경제적 기반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적산은 대단히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었다. 미 군정청 시절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10여 년에 걸쳐 대부분 민간에 불하됐는데, 적산 불하가 엄청난 이권이 되면서 이를 둘러싸고 각종 비리와 부패가 만연해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SK그룹이나 한화그룹 등 유수의 재벌 가운데는 불하받은 적산을 모태로 기업을 일군 곳이 적지 않다.
부산은 전국적으로도 적산가옥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꼽힌다. 광복 직후 부산의 적산가옥이 1만 4000여 채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다. 비교적 잘 보존되고 역사적 가치도 큰 적산가옥으로는 동래별장과 옛 정란각, 옛 백제병원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 이화동 이화벽화마을,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구 히로쓰 가옥), 대구 삼덕동 삼덕마루 등도 유명하다. 목포 역시 일제의 호남지역 수탈 창구였기에 적산가옥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오래된 일본식 건물’ 정도로만 취급받던 적산가옥이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픈 역사도 역시 우리 역사이기에 ‘네거티브 헤리티지(부정적 문화유산)’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가면서다. 대부분 도시의 구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도시재생 차원에서도 조명을 받고 있다. 손혜원 의원의 ‘목포 적산가옥’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뜨겁다. 근대역사문화재로 보존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이라는 주장과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부동산 투기일 뿐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진실은 검찰 조사에서 밝혀야겠지만, 이 같은 논란이 이제 막 시작된 목포의 근대역사문화 보존과 도시재생사업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유명준 논설위원 joony@
유명준 기자 joo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