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부산’스러운 섬 영도] 바람島, 사람島 쉬어 가는 곳 영도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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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의 서쪽, 영선2동 절벽 위에 자리잡은 흰여울 문화마을 전경. 해안을 따라 이어진 절영 해안산책로는 중리마을까지 이어진다. 영도의 서쪽, 영선2동 절벽 위에 자리잡은 흰여울 문화마을 전경. 해안을 따라 이어진 절영 해안산책로는 중리마을까지 이어진다.

영도는 부산에서도 바다를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한국전쟁 때는 전국에서 밀려온 피란민이, 이후 산업화 시기에는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떠나온 사람들이 모여 살아온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옛날에는 절영도라 불렸다. 그림자조차 볼 수 없을 만큼 빨리 달리는 명마, 즉 절영마를 키우던 목마장이 있던 곳이다.


영도가 요즘 뜨고 있다. 인터넷에서 ‘부산 가 볼 만한 곳’을 검색하면 흰여울 문화마을이 첫 번째로 뜬다.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주목받는 깡깡이 예술마을도 이곳에 있다. 이번 설 연휴에는 부산을 찾은 친지, 친구와 함께 영도를 찾는 것은 어떨까. 영도대교를 건너면 갑자기 다른 세상인 듯 특유의 분위기가 펼쳐지는 영도의 매력을 소개한다.


깡깡이마을


영도대교를 건너 영도경찰서 담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대평동 일대, 깡깡이마을이 나타난다. 수리조선소에 배가 들어오면 망치로 뱃전에 붙은 녹과 조개껍데기를 떼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하는데, 이때 ‘깡깡’ 소리가 난다. 깡깡이마을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왔다.


우리나라 조선소 발상지 ‘깡깡이마을’

피난민 애환·근대 산업현장 자취 물씬

깡깡이 문화센터, 관광객 찾는 ‘핫플’


노을이 아름다운 ‘흰여울 문화마을’

절영해안산책로 무지개계단 등 눈길

영화 ‘변호인’‘범죄와의 전쟁’ 촬영도


대평동의 첫 이미지는 낯섦이다. 길 바로 옆에 배들이 정박해 있고, 수리를 기다리는 배들이 독에 즐비하다. 냄새도, 분위기도 색다르다.

대평동은 100년 전만 해도 모래톱이었다. 바람을 기다리거나, 풍랑을 피하기 위한 포구라는 뜻에서 ‘대풍포(待風浦)’로 불리던 곳이다. 일본강점기 때 세 차례의 매립공사를 거쳐 지금의 버선발 모양을 갖췄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인 다나카 조선소가 설립된 조선소의 발상지이자 1970~1980년대에는 수리조선업의 메카로 성장했다. 구할 수 없는 선박 부품이 없었으며,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얘기가 전해올 정도다.

영도대교와 가까운 이유로 한국전쟁 시기 많은 피란민들이 들어와 살았고, 지금도 러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 선원들이 드나든다. 제주마을, 이북동네 등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1980년대 이후 조금씩 낙후되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대평동은 2015년 부산시 예술상상마을 공모에 선정되면서 깡깡이 예술마을이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됐다. 해안가를 따라 천천히 걸다보면 지역주민과 예술가가 힘을 합해 만든 벽화와 조형물, 쌈지공원 등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깡깡이 예술마을의 상징 조형물. 깡깡이 예술마을의 상징 조형물.

자갈치와 대평동을 이어주던 도선이 운행하던 옛 영도도선장 자리에는 깡깡이 안내센터와 ‘신기한 선박체험관’이 들어서 있다. 예인선을 활용해 만들어진 선박체험관에서는 예술가의 다양한 상상을 엿볼 수 있다. 바다정원으로 꾸며져 있어 마을의 선상 공원 역할까지 한다.

벽화골목 사거리에 자리한 마을공작소에서는 닻과 조타기, 선박 등 조립체험을 할 수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마을박물관과 마을다방이 있는 깡깡이 생활문화센터도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핫 플레이스다. 깡깡이마을의 중심지에 위치한 이 곳은 일제 강점기 신사가 있던 곳으로 해방 후 마을 공동소유가 돼 주민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바다정원으로 꾸며진 신비한 선박 체험관. 바다정원으로 꾸며진 신비한 선박 체험관.

깡깡이마을을 둘러보는 데는 정해진 동선이 없다. 해안가와 골목길을 마음 내키는 대로 다니면서 일제강점기와 피난민의 애환, 근대 산업현장의 자취를 천천히 살펴보자. 공장과 아파트, 골목길마다 다양한 페인팅 작품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흰여울 문화마을


흰여울마을 골목 계단길에 글자가 그려져 있다. 흰여울마을 골목 계단길에 글자가 그려져 있다.

흰여울마을은 탁 트인 조망과 해질녘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바로 앞 바다에는 수십 척의 거대한 배들이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 묘박지에 닻을 내린 채 정박해 있는 배들은 마치 우리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일러주는 듯 하다.

영도의 서쪽, 영선2동 절벽에 자리잡은 흰여울마을은 이탈리아의 해안마을 친퀘테레를 연상시킨다. 해안가 절벽 위 가파른 지형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과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된 골목길은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름으로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흰여울이라는 이름은 봉래산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골목을 따라 바다로 굽이쳐 내릴 때 하얗게 물거품이 이는 모습에서 따왔다. 2011년 영도구청에서 폐가를 리모델링해 젊은 문화인의 창작공간을 만들면서 흰여울 문화마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예전에는 제2송도, 줄여서 이송도라고 불렀다. 송도해수욕장이 있는 바다 건너편의 송도와 마주하고 있는 이곳이 경치로 두 번째라면 서럽다는 뜻이다. 첫 번째를 떠올리게 하는 두 번째보다는 흰여울이 훨씬 정겹게 다가온다.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예술가와 관광객들이 찾아드는 것도 흰여울이라는 이름이 알려지면서부터다.

흰여울마을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먼저 절영해안산책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버스를 타고 부산보건고등학교에서 내린 후 계단을 내려가면 흰여울마을 운영지원센터가 나타난다.

깡깡이마을에서부터 걸어서 가는 방법도 있다. 해안가를 따라 빨간색 홍등대와 남항대교 밑의 해상조망로를 지나면 절벽 위에 자리잡은 흰여울마을이 바로 눈 앞이다.

절영해안산책로에는 맏머리계단, 무지개계단, 피아노계단 등이 중간중간에 자리잡고 산책로와 흰여울마을을 곳곳에서 연결해 준다. 피아노계단 앞에는 지난해 12월 새로 뚫은 흰여울 해안터널이 관광객을 맞는다. 해안터널은 내부 조명과 이색 미디어아트로 젊은이들 사이에 새 명소로 자리 잡았다.

해안터널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흰여울마을이다. 가파른 산비탈에 기대어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고 갈매기 조형물과 물빛 타일 장식, 흰여울을 그린 바닥그림 등이 운치를 더해준다.

흰여울마을의 영화 ‘변호인’ 촬영지. 흰여울마을의 영화 ‘변호인’ 촬영지.

영화 ‘변호인’ 촬영지는 사람들이 꼭 찾아 사진을 찍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야기할매인 강정분(72) 씨는 “흰여울마을은 워낙 골목이 많아 누구든지 한번 숨어들면 경찰이 잡기를 포기하던 곳”이라며 범죄와의 전쟁 등 영화가 이곳에서 많이 촬영된 이유를 설명했다.

흰여울마을의 골목길은 지금의 절영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태종대를 잇는 유일한 도로였다. 지게꾼과 손수레가 오가던 그 길이 이제 부산에 오면 꼭 찾는 명소로 거듭났다.


이야기 할배·할매와 원도심 스토리투어


영도의 깡깡이 예술마을과 흰여울 문화마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부산 원도심 스토리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가 중구, 영도구 등 부산 원도심 지역의 근대역사 문화 자원과 먹거리, 볼거리 등을 연계해서 만든 골목투어 코스다.

영도다리 건너 깡깡이길을 걷다, 흰여울마을 만나다, 용두산 올라 부산포를 바라보다, 이바구길 걷다, 국제시장 기웃거리다, 응답하라 피란수도 1023, 수영의 시간을 건너다 등 7개 코스가 마련돼 있다. 토·일요일 오후 1시에 정기투어가 진행되며, 평일에는 원하는 시간대에 수시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 청춘을 보낸 ‘이야기 할배·할매’가 동백꽃을 달고 원도심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이야기 꽃을 피우는 스토리텔러로 활동한다. 이야기 할배·할매의 안내 덕분에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됐다며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원도심 스토리투어에 참가하려면 부산관광공사 홈페이지(https://bto.or.kr)에서 예약을 해야 한다. 정기투어는 1주일 전까지, 수시투어는 3일 전까지 신청하면 된다.

이용자에게는 스탬프북이 제공되며, 스탬프 개수에 따라 흑백사진관 이용권, 부산영화체험박물관 입장권 등이 선물로 주어진다.

글·사진=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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