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끊자] 5. 혐오 조장하는 정치
선거 때마다 지지층 결집 노린 ‘혐오 장사’… 침묵 더는 안 돼
지난해 6·13 지방선거 직전 부산 수영구 망미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담벽에 나붙은 후보자 선거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부산일보DB
미국과 유럽의 극우 정치인들이 ‘외국인 혐오’ 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인들이 ‘혐오 표현’으로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여야 정당, 혐오 정서 비판해도
선거 때면 소수자 배제 공약 봇물
인터넷 ‘일베’ 등 혐오 표현 양산
정치 사회적 대응 없어 확산일로
허위사실에 따른 정당의 차별 선동
선관위는 제지 않고 무책임 일관
혐오발언 국회의원 징계된 적 없어
국회법상 금지 규정 마련 등 필요
■선거에 활용된 혐오
여야 정당은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와 정치에 대한 혐오 정서에 대해 모두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달 21일 국회 토론회에서 “포용국가에서는 차별과 혐오가 늘어나지 않도록 갈등을 잘 해소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도 최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이 돼 주지 못하고, 불신을 넘어 혐오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해 가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선거가 다가오면 ‘지지층 결집’을 노린 정치인들의 혐오 발언이 쏟아지고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 정서도 깊어진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선거 과정에서의 혐오표현 대응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비하, 배제, 차별 등의 내용을 담은 공약을 내걸거나, 선거유세, 토론회 등에서 그와 같은 주장을 하며 시선을 끄는 후보자들이 상당수 나타났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가 점차 확산하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내용으로 하는 혐오표현을 마치 합리적 주장 혹은 견해의 하나로 거리낌 없이 발화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확고히 하는 데는 공직자들의 발언과 태도, 특히 정치인과 선거라는 이벤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지방선거 혐오대응 네트워크가 혐오표현 신고센터를 통해 접수한 혐오표현을 살펴보면 “동성애는 담배 피우는 것보다 훨씬 유해하다”거나 “어떻게 장애를 가진 사람이 (정치를)이끌 수 있겠느냐”는 발언이 있었다.
■혐오에 침묵하는 정치
정치권이 혐오와 차별에 대해 침묵하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관련 토론회에서 “2013년 일간베스트 사이트를 둘러싼 문제가 불거지면서 처음 혐오표현이란 규정과 처벌의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며 “인터넷에서 혐오표현을 사용하는 이들을 박근혜 정부 이후 정치권력은 최소한 방치하고 묵인했다. 정치, 사회적으로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혐오가 확산하는 흐름을 막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유가족이 단식을 하는 광화문 광장 앞에서 ‘폭식투쟁’을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지만 정치권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정치권의 혐오 장사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한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은 국회 토론회에서 “허위사실에 기반한 성소수자, 무슬림,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선동을 끊임없이 쏟아낸 정당의 혐오표현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 등은 어떠한 입장표명이나 제지를 하지 않았고, 유권자들은 정치적 주장이라기보다는 단지 소수자에 대한 혐오에 불과한 선거공보물을 마치 하나의 의견인 것처럼 받아야만 했다”고 밝혔다.
정당 내부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은경 민주당 여성리더십센터 소장은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민주당 소속 인사들의 여성혐오 발언 사례들을 언급한 뒤 “민주당 강령에 따라 일했다면 이런 일을 해선 안 됐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일이 언론에 보도되고 당내 논의가 있는 상황에서도 당 홈페이지를 통해 당이 어떻게 조치했고 어떤 입장인지 분명하게 표현한 적은 많지 않다. 메시지가 상당히 부족하지 않은가 염려가 있다”고 당 차원의 문제를 지적했다.
여야 정당이 윤리 규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지만 장애인, 노인, 여성에 대한 비하발언을 금지하는 수준의 규정만 마련해 두고 있는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 금지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 사례가 거의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동성애 혐오발언을 한 혐의로 극우 정치인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프랑스의 ‘원조 극우’ 정치인으로 꼽히는 장마리 르펜은 지난해 테러로 숨진 경찰관 등에게 동성애 혐오발언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르펜을 기소한 검사는 재판에서 르펜의 글이 동성애를 금지하라는 명백한 촉구로 해석됐다면서 벌금 8000유로(1000만 원 상당)를 구형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의원들도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혐오발언을 하면 국회법에 의해 징계를 요구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런 이유로 징계받은 사례가 없다. 이 때문에 국회법상 국회의원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 금지 규정을 마련하고, 징계가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윤리위원회와 본회의 의결 절차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