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부산 문화 인프라의 동고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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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지에서 오는 손님이나 관광객이 달라진 부산을 보고 놀라는 일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그들 이야기의 골자는 지금의 부산은 10년 전의 부산과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찬사들이 반드시 듣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들지만은 않는다. 매일 보는 사람이라 외지인의 시선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격세지감이나 10년 풍상을 논한 정도는 아니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소위 ‘강남’이나 ‘홍콩’에 버금간다는 부산의 한 지역만을 예로 든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이제는 필수 관광코스가 되어버린 해운대의 특수 지구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감탄과 흥분이 과하게 담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서부산 문화의 불모지 전락

영화관·소극장·박물관 등 드물어

부족과 결핍 당연시하는 인식도 문제

문화적 분배와 인프라 형평성

10년 전보다 불균형 더 심화

문화의 균형 위한 시민 의식 키워야

도시의 외양이 화려해질수록 이러한 불편은 현실의 불균형으로 나타난다. 이른바 부산의 서쪽(대체로 부산역을 기준으로 그 왼쪽)은 이러한 불균형에 희생될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거리의 외형이고 건물의 높이이겠지만, 그 안에 도사린 심각한 문제는 문화 인프라의 부재(부족)와 그 형평성의 고갈이다. 이른바 문화 인프라의 지형이 동고서저형으로 심하게 기울면서, ‘기울어지는 운동장’처럼 서쪽의 부산은 문화의 불모지로 전락하고 있다.

비근한 예를 들어보자.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작은 남포동 일대였다. 그곳에는 100년 영화(榮華)를 자랑하던 ‘부산의 영화가(映畵街)’가 존재하고 있었다. 부산 사람들에게도 생소하겠지만 이 영화가는 유서 깊은 문화거리로, 그 근간이 된 옛 장수통(현 광복동) 일대는 1890년대부터 형성된 조선 최고의 극장가 중 하나였다. 비록 일본 조계지에서 연원하기는 했지만, 그곳에서 시작된 극장(연극영화관) 문화는 인천으로 부산으로 그리고 인근 지역으로 전파될 정도로 20세기 초엽 문화의 새로운 중심이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문화적 인프라는 확고해졌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될 즈음에만 해도 그 자부심이 여전했다. 하지만 지금-2010년대의 그곳은 영화 거리의 명성을 상실한지 오래이다. 비단 그곳의 극장 수가 줄었다는 지적보다도, 그곳을 찾는 관객 수가 줄었다는 외형적 평가보다도, 그곳의 극장을 문화의 기본 인프라로 생각하는 부산의 인식이 떠난 것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시각을 넓히면, 부산의 ‘서쪽’에는 비단 영화관뿐만 아니라 소극장도, 미술관도, 전시관도, 박물관도 드물게 존재한다.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더 합당한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부족과 결핍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동시대 부산인들의 인식이다. 당연히 부산의 서쪽에서 극장을 짓고 문화 시설을 확대하고 다양한 문화적 감각을 향유할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현실에서 힘을 잃고 있다.

부산의 발전을 건물의 고층화나 외양의 화려함으로만 재단하려 한다면 10년 전의 부산과 지금의 부산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 다름을 발전(progress)로 바라보는 시각도 가능할 수야 있겠지만, 문화적 분배와 인프라의 형평성에서 보면 지금의 부산이 10년 전의 부산보다 균형 잡혔다고 단언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문화의 균형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동고서저의 기본 구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균형의 출발점은 전문가들이 아닌 부산시민의 인식에서 연원한다는 점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김남석 문학 평론가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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