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3·1운동 100주년, 미완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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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섭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준비되고 열리고 있다. 3·1운동의 성격에 관하여 만세시위에서부터 만세운동을 거쳐 혁명으로 승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한편, 최근의 촛불혁명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보는 입장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3·1운동 당시 만세운동 참가자에 대한 형사판결문들을 공부해 볼 기회를 가졌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고, 더불어 남겨진 과제도 인식할 수 있었다.

먼저 3·1 운동과 관련된 사료, 특히 판결문들이 일부이긴 하지만 잘 보존되어 왔고 정리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당시 조선의 고등법원(최고심) 판결 자료에는 민족대표 33인을 포함하여 실제 만세운동의 주역인 48인에 대한 재판기록이 보존되고 있고, 다수의 판결문이 지방법원, 복심법원(항소심), 고등법원의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더구나 국가기록원에서는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이 대부분 일본어로 작성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여 이를 모두 한글로 번역해 인터넷으로 제공하고 있다.

방대한 3·1운동 당시 역사적 자료

민초 외침에 초점 둔 연구 부족

연구자 구하기도 갈수록 어려워

새로운 대한민국 출발점 되려면

일회적 행사로만 그쳐선 안 돼

역사 잊지 말고 미래 준비해야

나아가 3·1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놀란 일제가 새롭게 펼친 문화정치에 힘입어 1920년에 창간된 동아일보에 실린 48인의 재판에 대한 기사 내용도 국사편찬위원회가 구축한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기사 제목과 원문을 편리하게 검색할 수 있었다. 당시 기자들이 공판 과정에서 벌어지는 재판장 또는 검사와 피고인들 간의 신문 내용을 생생하게 기사화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재판정에 와 있는 듯한 느낌까지 들게 했다. 위 기사들에는 당시 피고인들을 변호했던 ‘민족 변호사들’의 활약들도 박진감 넘치게 담겨 있는데, 당시 활약했던 김병로, 허헌 등 당대 최고의 변호사들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수년 전 출간된 <식민지법정에서 독립을 변론하다>(서울대 한인섭 교수)라는 책에는 일제 치하에서 정치(精緻)한 논리로 식민지 일본 판사들과 논리 대결을 벌이는 ‘항일 재판투쟁’의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또한 최근 출간된 <법률가들>(경북대 김두식 교수)에서는 일제하 변호사시험 출신자들의 탄생과 부각을 생생히 전달해 주고 있다. 부산대 문준영 교수의 <법원과 검찰의 탄생>과 그의 ‘식민지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논문들을 읽으면서 법학 분야에서 우리의 뿌리를 찾는 ‘법사학(法史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도 발견했다. 지금까지 3·1운동이 ‘영웅들’ 위주로 기술되다 보니 판결문에 등장하는 민초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그들의 절규가 제대로 후대에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우리 지역의 3·1운동, 우리 마을의 3·1운동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각지에서 일어난 민중의 3·1운동이 더욱 선명히 부각될 필요가 있다.

만세운동에 참여한 대다수 참가자들에게 적용된 ‘보안법’ 재판의 판결문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역도 문제다. ‘피고’와 ‘피고인’을 혼용하는 일은 차치하고라도, 일제강점기 당시 ‘항소(抗訴)’에 해당하는 ‘공소(控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를 그저 한글로만 표기하다 보니 ‘공소기각’(控訴棄却)이 ‘항소기각’(抗訴棄却)이 아닌 ‘공소기각’(公訴棄却)으로 오해될 수 있다. 향후 한자를 병기하거나 간단한 해설이 첨부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국가기록원이 펴낸 <독립운동판결문자료집> ‘3·1운동’ 편에서는 각 지방법원에서 내려진 판결문과 번역문이 정리되어 있으나, 이런 귀중한 자료들을 토대로 식민지 조선의 형사사법(刑事司法)과 그 구조를 연구할 연구자들이 갈수록 구하기 어려워진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는 당시 조선과 대만, 만주까지 미치는 일본 법역(法域)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음은 물론, 당시 조선에 와서 식민법제를 수립한 관료와 교수들, 재판에 관여했던 판사들에 대한 연구까지 진행되고 있다. 3·1운동이 진정한 역사적 사건으로 영원히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일회적인 행사들을 넘어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자의 양성이 필요하고, 연구 분야도 더욱 다양해져야 한다.

최근 일제 강제징용사건에 대한 손해배상판결 승소를 비롯하여 일제 치하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이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판결이 나오기까지에는 많은 연구자의 깊이 있는 논문과 운동가의 오랜 기간의 노력이 그 뿌리에 놓여 있다. 3·1운동 100주년이 보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출발점으로 오늘에 새롭게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당시의 방대한 사료를 정확하게 정리하는 작업, 기존의 영웅사관을 넘어선 민중의 외침에 초점을 맞추는 일, 그리고 소외된 학문 영역으로서의 법사학이 제대로 설 수 있도록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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