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엑스포의 역사' 박람회는 근대성의 거대한 호수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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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엑스포의 역사/하세봉

1851년 런던박람회의 수정궁 묘사도. 사진=산지니 제공 1851년 런던박람회의 수정궁 묘사도. 사진=산지니 제공
1903년 오사카 제5회 내국권업박람회의 조감도. 1903년 오사카 제5회 내국권업박람회의 조감도.

2025년 세계박람회 개최지로 오사카가 선정됐다. 박람회가 가지는 경제적 효과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의문이 제기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세계 각국은 엄청난 비용이 드는 박람회 유치를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

박람회는 언제부터 시작됐고 지금 시대에 박람회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은 1851년 런던박람회로부터 시작된 세계 박람회의 역사를 2012년 여수박람회까지 동아시아 박람회를 중심으로 그 변천사를 다룬다.

문명과 과학, 국가와 민족 응축

자국의 발전 과시하는 장으로 활용

유럽과 미국 서구 박람회 연계선상서

일본·중국·한국·타이완 박람회 분석

동아시아 역사와 지역의 시선 조명

거대 이벤트의 빛과 그림자도 짚어

저자는 박람회의 역사를 문명과 과학, 오락과 소비주의, 이데올로기, 환경생태의 박람회 시대 등 시대 흐름에 따라 네 단계로 나눠 분석하고 정리했다.

그 결과 박람회는 근대성의 집약체로 파악된다. 저자는 “박람회는 근대성의 거대한 호수였다”고 말한다. 박람회는 인간 문명의 진보와 발전, 기술과 과학, 국가와 민족 등이 응축된 거대 이벤트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국제와 세계, 전통과 민속, 지식과 정보, 도시와 대중, 엘리트와 계몽, 교육과 비전, 상품과 광고, 예술과 건축, 스포츠와 영상문화, 오락과 축제 등이 박람회로 와서 모이고, 박람회에서부터 모습을 바꿔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박람회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통해 시대 상황을 들여다보고 동아시아의 역사를 비춰본다. 이를 위해 우선 세계 박람회의 전체적 흐름을 정리하면서 동아시아 박람회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박람회는 타국에서 개최되는 박람회를 참고해 자국의 박람회를 기획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1851년 최초의 박람회였던 영국의 런던박람회는 자국의 과학기술과 문명을 세계인에게 알리는 자리였다. 박람회의 상징 건물로 유리로 된 거대한 수정궁을 짓고 수천 명의 관광객을 끌어 모아 세계의 이슈가 됐다. 영국에 경쟁의식을 느낀 프랑스는 1889년 파리박람회 때 지금까지도 프랑스의 상징이 되고 있는 에펠탑을 세웠다.

유럽의 박람회는 미국에 자극을 주었고, 미국은 신흥국가로서 자국의 산업을 홍보하기 위한 거대한 이벤트로 박람회를 개최했다. 당시 박람회는 자국의 문명과 과학을 과시하는 장으로서 크게 각광받았다.

1935년 타이완박람회의 조선관 1935년 타이완박람회의 조선관

이후 박람회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오락과 흥행을 겸한 소비주의 박람회로 변모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국가보다는 거대 기업이 박람회에 뛰어든다. 또 점차 생태와 환경 문제가 대두하면서 박람회의 주제도 역시 환경생태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같은 추세 속에서 여러 동아시아 박람회의 시대적 상황과 개최지의 특징, 박람회의 성격 등을 분석하고 설명한다. 동아시아의 박람회는 일본에서 시작됐는데, 근대적 의미의 첫 박람회는 1877년 도쿄에서 열린 제1회 내국권업박람회였다.

19세기까지 일본은 서구 박람회의 근대를 모방하고 수용했지만, 20세기 들어서는 박람회를 스펙터클하게 꾸밀 산업·재정적 바탕을 보유하게 되었고, 청일전쟁으로 타이완을 식민지로 보유하면서 제국으로 탐바꿈하고 있었다. 이런 정치적 상황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주는 박람회가 제국주의 일본의 동아시아 관(觀)을 잘 보여준 1903년의 오사카 권업박람회였다.

중국은 일본과 대조적으로 세계적 조류인 박람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1910년에 가서야 처음으로 난양권업회라고 불린 박람회를 난징에서 개최했다. 조선에서 개최된 박람회의 효시는 1907년 열린 경성박람회였는데, 통감부가 기획해 서울에 거주하던 일본 상인을 동원해 개최한 박람회였다. 1935년 열린 타이완박람회에 설치된 각 지역관의 공간 배치나 디자인, 전시품의 디스플레이 등을 통해서는 당시 타이완에서 형성된 동아시아 각 지역의 이미지와 지역상을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박람회에서 사용되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나 전시품, 사진, 포스터 등 시각적 매체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박람회의 정보가 어떻게 전달되고 해석되는지 설명한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 박람회에 나타났던 근대의 양상들을 바라보고, 박람회 속의 동아시아에 대한 시선을 분석한다.

개최 도시와 공간의 의미를 추적하기도 하고, 지역의 표상으로서의 박람회를 살핀다. 1937년 열린 나고야 범태평양평화박람회의 로컬리티는 평화와 전쟁이었다. 그런가 하면 박람회에 나타난 국가의 계몽주의와 박람회의 유혹에 몰려든 ‘보따리 구경꾼’을 얘기한다. 냉전시대 이후의 엑스포의 성격으로 해양일본과 로컬리티(1975년 오키나와 해양엑스포), 테크노피아의 빛과 그림자(2010년 상하이 엑스포) 등을 추적한다.

저자는 동아시아 박람회의 본질적 특징을 문명과 제국에 대한 포지티브한 공감을 유도하는 감성공학으로서의 메가 이벤트라고 결론짓는다. 박람회가 전시에 대한 단일한 감정을 공작하는 것을 목표로 관람객들에게 의도된 감성적 효과를 만들어내고자 했다는 점에서다.

박람회는 개최지의 명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일시적인 환상에 머무를 수도 있다. 책은 동아시아 박람회의 역사와 현상을 짚으며, 거대 이벤트가 가지는 빛과 그림자를 조명한다. 하세봉 지음/산지니/480쪽/3만 5000원.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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