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선] 나의 수영 이야기
/강은교 시인
나의 수영 이야기는 상처투성이인데 그 때문에 나는 참 많은 것을 배웠음을 이 글에서 부끄럽지만 고백하려 한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쯤에 나의 수영은 시작되었다. 수영을 잘하는 이들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이겠지만,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지진아라는 것을 알았다. 남들은 몇 번 발차기를 한 다음 레인을 헤엄쳐 나아가는데 나는 그게 안 되는 것이었다.
두어 차례 강습 받다 수영 ‘지진아’ 모욕감
뒤늦게 ‘효도반’ 강사 통해 배려 받는 느낌
‘빨리빨리, 잘하라’고 부추기는 교육 아닌
지진아도 품고, 기다려 주는 교육 펼쳐지길
얼마 지나지 않아 수영 강사는 다른 강습생들을 가지 못하게 앞을 가로막곤 하는 나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리 비켜요!” 그리고는 나를 사람들 앞에 세우고 “저기 보이시죠? 저기서 발차기를 더 연습하세요!”
좀 창피스러웠지만 나는 구석으로 가서 발차기를 다시 시작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발차기를 계속했다. 왜냐면 수영 강사는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일주일이 되었으나 수영 강사는 나를 부르지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강습생이 많아 그랬겠지만, 제대로 하는 것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거의 한 달이 지난 뒤, 나는 ‘구석에서의 발차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수영 강습 등록은 절대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혼자 연습하기로 한 것이다. 지진아인 나에겐 ‘나 홀로’방법밖에 없음을 가슴 아프게 깨달으면서.
나는 수영 비디오를 샀다. 수영책도 함께 샀다. 침대 위에서 또는 장의자 위에서, 또는 방바닥에서 나는 책을 펼쳐 놓고 비디오를 틀어 놓고 팔다리를 휘저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나는 나의 발목에 채운 쇠사슬이 ‘펑~’ 하면서 풀리는 소리를 들었다. 놀랍게도 나의 몸은 ‘붕’ 뜨는 것이었다. 아마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수영장에 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좀 오만하게 되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젠 되잖아, 더 연습할 필요 없어.’
두 번째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자꾸 체력이 약해짐을 실감하던 나는 어느 날 문득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수영 지진아로서 좀 겁나기는 하지만 수영장에 등록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나의 느린 수영 속도를 참지 못한 수영 강사는 나에게 신경질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저리 비켜요!’ 하는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그 자리에 섰다. “거기, 거기 옆으로 비키란 말예요.” 혀까지 끌끌 찼다. 나는 심한 모욕감에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고 그 수영장을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몇 번 더 그 비슷한 일을 당한 후로는 거기로 다신 가지 않았다. 아니, 갈 수가 없었다. 나는 상처로부터 또 배웠다. 나는 지진아라는 것을. 나는 나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이젠 그만 꿈을 접으라고.
그러다 더 나이가 먹어 누군가 나에게 한 수영장을 추천했다. 자격 요건이 60세 이상인 ‘효도반’에 등록했다. 수영 강사는 부끄러워하는 나에게 말했다. “못해도 괜찮아요. 그냥 노세요. 누군 처음부터 잘 하나요?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게 가는 길과 오는 길만 잘 지키세요.” 내가 레인을 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곤 했다. 나는 마음 놓고 수영하기 시작했다. 나의 수영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수영장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교육’에 대해 새삼 생각했다. 교육은 ‘기다려 줌’이 아닐까 하고. ‘빨리 가라’고만 하는 우리의 교육, ‘잘하라’고만 하는 우리의 교육, 잘하는 순서대로 일렬로 세우는 우리의 교육, 뒤에 선 사람에겐 모욕감을 주는 우리의 교육, 수학에서는 수재라 해도 국어엔 지진아일 수 있음을 인정해주지 않는 우리의 교육. 그것이 교육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3월도 중순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새 학년이다. 어떤 교육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인가. 우리는 모두 어디로 갈 것인가. 아니 처음부터 아무 데도 가지 않기로 결정할 것인가. 청신한 젊은이들을 상처투성이로, 그 상처 안에 주저앉힐 것인가. 그래서 자기 꿈을 펼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자기를 평생 원망하며 지내게 할 것인가.
결국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사회는 풍요로워지기 힘들 것이다. 모든 지진아가, ‘방해’되지 않는, 한 분야의 지진아가 다른 분야에서도 지진아여야 한다는 법은 없음을 받아들이는, 그런 교육이 우리 앞에 펼쳐지길 바란다. 나의 수영 상처가 힘들게 오랜 세월에 걸쳐 가르쳐준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