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작은 것에 깃든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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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는 해운대라는 명소가 있듯, 대구에는 수성못이라는 특별한 유원지가 있다. 수려한 자연 환경(호수)이 갖추어져 있고 여기에 주변을 감싸듯 화려하고 세련된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이곳은 지역의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명소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성못 유원지는 산책로 기능도 겸하고 있는데, 구불구불 이어지며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길은 유람을 나온 이들이 한번쯤 걸어보았음직한 길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꽤나 눈에 띠는 낯선 설치물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산책로 주변에 설치된 ‘반려견(애견) 배변 봉투함’이었다. 영어로 그 이름(‘Pets Wastebag’)을 명시할 정도로 그 존재감을 분명히 드러내는 이 설치물은, 이 세상을 함께 살고자 하는 이들의 관심과 고심을 함께 드러내고 있기도 했다.

대구 수성못 유원지 산책로 유명

‘반려견 배변 봉투함’ 설치

반려견 정착 돕는 사회적 배려

부산은 개·고양이 위한 배려 부족

배변 봉투함 필요성에도 무관심

모든 생명 공존하는 세상 만들어야

과거에는 주로 ‘애완견’이라고 불리던 ‘반려견’의 숫자가 늘어나자 이에 발맞추어 ‘유기견’의 숫자 역시 늘어나기 시작했고, 각 도시는 버려지는 동물과 늘어나는 동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에 부심하고 있다. 아이러니는 각 도시의 애완견 센터가 호황을 누리면서 동시에 유기견 보호 센터 역시 만원사례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는 애완견 센터에서 강아지를 사서 ‘애완견’으로 키우다가 그를 진정한 ‘반려견’으로 맞아들여야 하는 시점이 되면 자신의 의무를 포기하고 ‘유기견’ 센터로 돌려보내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애견 배변 봉투함은 ‘우리 곁의 개들’이 ‘진정한 반려견’으로 남을 수 있도록 돕는 작은 사회적 배려에 해당한다. 각종 유원지를 찾는 이들은 비단 사람만은 아니다. 사람과 개가 함께 하는 가족도 있을 수 있으며, 예외적이기는 하겠지만 고양이나 다른 동물을 동반한 가족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강아지나 이러한 동물들을 위한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오히려 이러한 가족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할 때도 적지 않다. 첨성대 일대를 둘러보는 길은 함께 걷고 싶은 길이지만, 개와 함께 걸어야 할 때는 상당한 각오를 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부산은 어떠할까. 부산은 곳곳이 유원지이고 가는 곳마다 관광지이다. 하지만 개와 고양이를 위한 배려는 좀처럼 찾을 수 없다. 그 작은 설치물인 ‘반려견 배변 봉투함’에 어린 고심에 찬 시선을 아직은 느껴 본 적이 없다고 해야 할까.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배변 봉투함을 소수자들의 전유물로 인정하거나, 다수의 인간에게는 불필요하다는 무관심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다고 할지도 모른다. 개와 고양이가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다녀야 하고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라야 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확실히 인간의 존엄한 입장을 강조하는 생각은 존중받아야 하겠지만, 동시에 모든 생명이 공존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일이 인간이라면 외면할 수 없는 의무라는 점도 기억했으면 한다. 애초 인간이 도시를 만들면서 자연을 밀어냈고, 너구리가 살 공간을 빼앗았으며, 고래의 투표권도 몰수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부산이 더 나은 도시가 되는 방안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 방안을 궁리할 때 인간만을 위한 건물을 더 높게 올리고 자동차를 위한 길만을 더 공들여 닦는 일만 포함하지 않았으면 한다. 본래부터 집과 길과 도시와 그것 모두를 포함하는 세상은 비단 인간만의 몫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곁에는 분명 개와 고양이가 있고, 조금 더 멀리에는 멧돼지와 노루와 너구리가 있으며, 그 끝 어딘가에는 고래와 다른 동물도 존재하고 있다. 그들 역시 좁게는 도시의 거주자들이고, 넓게는 이 세상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김남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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