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좌초 위기 선거제 개혁, 누구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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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재권 부경대 정외과 교수

선거제 개혁과 관련한 여야의 대치 상황이 엄중하기 그지없다. 국회 의석 300석 중 75석을 권역별 명부에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혼용해 구성하자는 여야 4당의 합의안과 47석의 비례의석을 아예 없애 버리고 지역구로만 270석 정원을 채워 30석의 국회 의석을 줄이자는 자유한국당 단일안이 극과 극으로 부딪히며 해결의 실마리가 좀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여야 4당의 합의로 ‘패스트 트랙(fast track)’을 태우는 새로운 실험이 시도되고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그 또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내부에서 공직수사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 등에 대한 이견이 많아 합의안 도출이 쉽지 않다.

선거제 개혁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교착 상황에 대한 책임은 굳이 묻자면 누구에게 있을까? 여야의 서로 다른 정치적 계산이 결국 오늘의 사태를 만들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그 모든 책임을 국회와 정당으로만 돌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그렇지 않다. 정말 더 크고 위중한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 우리 국민들은 모든 것을 부정한 정치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매년 실시하는 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서 국회는 정부 기관 중 ‘신뢰도 꼴찌’의 멍에를 벗어 본 적이 거의 없다.

여야 4당 합의안, 한국당 ‘어깃장’

‘패스트 트랙’ 올렸지만 교착 거듭

국회의원 증원 반대 여론 왜곡

기득권 매달리는 양당제 폐해 뚜렷

4년마다 다시 뽑아준 국민들 잘못

결국 정치개혁 ‘발목’ 부메랑으로

그렇다. 우리의 여의도 정치는 썩을 대로 썩었고 국회의원들은 나라의 녹만 축내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런 의원들을 누가 그 자리에 앉혔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4년마다 되풀이되는 선거를 통해 그런 썩은 부위를 얼마든지 도려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우리 국민들은 그들을 갈아치우지 못했을까? 그러고도 왜 계속 그들을 불신하고 욕을 해대는 것일까? 국민들에게 정치란 무능하고 비효율적이며 차라리 없는 것만도 못하다는 인식을 깊이 심어 준 언론에 그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매번 선거에서 국민들이 냉철한 표심으로 여의도의 정치 모리배들을 국회로부터 몰아내었다면 과연 그들이 그토록 의정을 농단할 수 있었을까? 결코 아니다. 정치적 셈법에 강한 그들 여의도의 정치인은 국민들의 속성을 너무도 잘 안다. 국민들은 늘 그들을 부정적으로 보아 오지만 결국 그런 국민들에게 남겨진 선택지가 빤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아는 것이다. 기득권에 기댄 양당정치가 만들어 낸 불편한 진실이다. 그래서 결국 다시 그들 외에는 선택을 달리 할 방법이 없다는 매우 근거 있는 자신감 때문에 그들은 국민 앞에 그리 무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내부자’에서 논설주간으로 등장하는 이강희(백윤식 분)가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들입니다”란 대사를 그리 쉽게 내뱉을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현명한 국민이라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바탕을 둔 선거제 개혁이 결국 그런 국민의 선택지를 넓혀 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는 걸 쉽게 이해해야 한다. 거대 양당에 의존해 온 구태 정치에서 벗어나 다양한 선택이 가능해지고 그래서 연합과 타협의 정치가 가능토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그나마 선택 가능한 현실적 대안임을 일찍이 깨우쳐야 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국민의 대다수가 정치에 신물 난다는 이유 하나로 국회의원 증원에 반대했다. 늘어나게 될 30~60명의 국회의원들이 낭비하게 될 예산이 아깝다며 국민 스스로 금쪽같은 개혁의 기회를 걷어차고 그 공을 답이 빤한 국회로 돌려보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거대 양당은 그런 국민 정서를 등에 업고 기득권 사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거대 양당 모두가 국민이 원하는 대로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고 갈 수 있는 개혁의 임계치는 이 정도라며 소수 야당들을 어르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국민들 가려운 곳을 더 긁어주려면 차제에 국회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고 혹세무민에 가까운 발언마저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과다한 사표 발생으로 표심을 왜곡해 온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비례대표제가 오히려 표심을 왜곡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를 들이대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국민들을 우롱하기는 정치인들도 ‘내부자’의 그 언론인들 못지않은 것이다.

그토록 정치의 개혁을 원하면서도 가장 개혁적일 수 없는 방법을 선택한 국민, 그래서 결국은 현실에서 한 발도 앞서 나갈 수 없는 오늘의 상황을 만들어 낸 국민. 한마디로 자승자박에 다름 아니다. 이런 국민과 그들을 으르고 달래며 기득권을 유지해 가고 있는 수구 언론과 거대 양당이 존재하는 한 한국정치의 개혁은 요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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