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인터넷은행 2년,‘메기 효과’ 갈수록 약효 떨어진다

이정희 기자 ljnh@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정희 서울본부장

미꾸라지를 장거리 운송할 때 수족관에 메기를 넣으면 미꾸라지들이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생기를 얻고, 죽지 않는다. ‘천적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사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논리다. 메기로 미꾸라지를 생존시키는 현상을 기업경영에 접목한 것이 ‘메기 효과’(catfish effect)다.

‘메기 효과’에 대해서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일화도 거론된다. 젊은 시절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다 귀국해 경남 의령에서 농사지을 때 미꾸라지도 길렀다고 한다. 논 한 마지기(200평)에는 미꾸라지만 1000마리, 다른 한 마지기에는 미꾸라지 1000마리와 메기 20마리를 넣었다. 앞의 논은 미꾸라지가 2000마리로 불어났고 메기를 함께 넣은 논은 메기가 잡아먹었는데도 미꾸라지가 4000마리로 불어났다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이 기업을 더 강하게 만든다는 이병철 회장의 ‘메기론(論)’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인터넷은행 고객 1000만 명 목전

비대면·간편 송금으로 기존 은행 긴장

갈수록 기존 은행 답습 정체성 잃어

비이자부문 확대 등 규제 풀어줘야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비대면 채널을 통해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강점을 내세운 인터넷은행이 지난 3일로 출범 2주년을 맞았다. 2년 전 인터넷은행이 출범할 때 시장이 기대한 것은 기존 금융권의 혁신을 자극해 판을 흔드는 ‘메기효과’였다. 인터넷은행은 스마트폰에서 숫자 몇 개만 누르면 송금되는 편리함을 무기로 단기간에 고객을 끌어모았다. 1호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와 2호인 카카오뱅크 고객은 3월 말 현재 989만 명으로 10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민은행의 고객이 3100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터넷은행 2곳이 2년 만에 국민은행 고객의 30%를 끌어들인 것이다. 두 은행의 고객 수를 감안하면 국민 5명 중 1명은 인터넷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은행의 탄생으로 확실히 눈에 띄게 변한 부분들이 있다. 은행업무의 비대면화, 간편 송금 등 금융소비자들을 위한 편의성을 높이면서 기존 은행들의 긴장감을 불러왔다. 기존 은행들이 비대면계좌 개설이나 공인인증서 폐지 같은 변화에 나선 것이 인터넷은행의 자극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메기효과’는 분명 있었다.

금융당국은 은행간 경쟁도를 더욱 높이겠다며 올해내에 또 한마리의 ‘메기’를 풀어놓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9월 국회를 설득해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특례법의 핵심은 기존에는 은행법에 따라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10%(의결권 행사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제한했으나 인터넷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34%로 높인 것이다.

문제는 출범 2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은행을 들여다보면 출범 초기 시장 판도를 뒤흔들 잠재력을 갖췄다고 평가를 받긴했으나 시간이 갈수독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는 점이다. 정부가 인터넷은행을 도입한 이유는 기존 은행과 차별화한 서비스 제공이다. 고신용자만 상대하는 은행, 고금리 대출에 치중하는 제2금융권의 틈새를 노린 중금리 대출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카카오뱅크의 중금리 대출은 대출잔액 20%선, K뱅크는 16% 미만이다. 나머지는 역시 고신용자 대출이다. 예적금상품도 비슷하고 대출 금리도 처음보다는 많이 올라서 기존 은행하고 차이가 없거나 심지어 더 높은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은행의 수익은 대부분 이자수익(예대마진)으로부터 나오는데 인터넷은행 역시 이자수익 중심의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 전통적인 예금과 대출 업무 외 다른 금융서비스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이 나오기 위해서는 이자수익 외에 다른 수입이 기반이 돼야 한다. 하지만 비이자이익 확대는 금융당국의 수수료 규제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 세븐은행(세븐일레븐의 유통망 이용한 ATM 사업)과 영국 몬조은행(편리한 선불카드 서비스)은 수수료 같은 비이자 부문에서 90% 이상 수익을 올린다. 기존 은행이 하지 못하던 틈새시장을 뚫어 성공한 경우다. 반면 카카오뱅크의 비이자 수익 비중은 28%, 케이뱅크의 경우는 11%에 그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금융당국이 인터넷은행특례법까지 만들면서 멍석을 깔아놨는데 네이버·인터파크 등 주요 IT기업들이 사업 참여 의사가 없거나 망설이면서 시장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있는 실정이다.

주요 선진국의 사정은 다르다. 미국 1995년, 일본 2001년, 영국 2015년 이후 생겨난 인터넷전문은행들은 무럭무럭 자라 지금은 개화기를 맞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금융산업을 세계 꼴찌로 만든 ‘거미줄 규제’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과 영국 등에서는 인터넷은행이 모바일 금융혁신을 주도하지만 우리나라는 규제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메기’를 원하면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ljnh@busan.com


이정희 기자 ljnh@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